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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헌화 행렬

입력
2022.11.04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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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가을의 끝자락, 11월에 들어섰다. 7일은 ‘입동’(立冬)이다. 이십사절기 중 열아홉 번째로 겨울의 시작을 예고한다. ‘만추’(晩秋)를 만끽하려면 가을을 대표하는 국화를 떠올리게 된다. 형형색색으로 흐드러지게 피면서 아름다운 향기가 진동하는 지금이 절정이다. 국화는 날씨가 차가워진 가을에 서리를 맞으며 홀로 핀다.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국화에서 찾은 동양의 전통도 그 때문일 것이다.

□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는 압사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조화’(弔花)로 가득 찼다. 국화 다발이 수북이 쌓여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언제부터 국화가 추모의 장에 쓰였을까. 전통 상여(喪輿)를 장식한 건 연꽃이었고, 미국·영국 등은 1차 세계대전 전몰 장병 추모식 때부터 붉은 양귀비를 사용했다. 흰 국화를 헌화하는 풍습은 개화기 이후 정해졌다는 게 정설이다. 조의를 표하는 검은색과 맞아떨어져 관습이 된 것이다.

□ 올해 초 국화는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코로나 사망자가 급증한 탓에 국화 가격이 치솟아 꽃집 운영자들이 진땀을 뺐다. 국화 한 단에 6,000원에서 1만 원이면 구했는데 5만 원을 주고도 어렵게 된 상인들이 적지 않았다. 겨울 난방비 문제로 국내 재배의 한계가 컸는데 중국 수입마저 줄어 물량이 부족해진 탓이다. 그 탓에 근조화환 제작업체들이 주문 불가 및 배송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코로나 재유행을 앞둔 겨울이 불안한 이유다.

□ 생화가 아닌 조화(모형꽃)는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 폐기해야 한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연간 1억5,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조화를 수입해 현충일과 국군의날에 헌화하고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조화 쓰레기가 연간 10여 톤에 달한다. 대우가 다른 조화도 있다. 김대중도서관에는 2009년 8월 북한 조문단이 갖고 온 높이 2m의 김정일 조화가 특수화학 처리돼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국가애도기간에 미사일을 쏴대는 반인륜적 도발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난세를 맞은 국민은 비통하고 참담하다.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인파가 쓰러졌다. 국가가 제 기능을 하는지 느낄 수 없는 시국이다. 향기를 피우지도 못하고 떠난 꽃다운 젊음들에게 지면으로나마 국화 한 송이를 바친다.

박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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