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로 '전 국민 트라우마 치료' 필요
트라우마 센터 상담 1년 새 평균 40% 증가
尹 정부 '트라우마 치료' 예산 고작 3% 증가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 예산은 18% 감소
4일 오후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 위치한 '이태원 사고 심리 지원 상담소'에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했던 20대 남성이 찾아왔다. 그는 산소를 달라는 목소리가 귀에 울리고 악몽이 반복돼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만원버스를 타자 공황 발작 증세가 나타나 응급실 신세도 졌다. 그는 “용산구청이나 병원, 정신건강 상담전화(1577-0199) 등 어디에서도 안내를 받지 못했다”며 이날 부스를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상담을 마친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무 안내도 못 받았다니 정부가 공언한 트라우마 치료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라며 “너무나 안타깝고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참사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유가족과 생존자, 구조에 동참했던 시민, 그리고 이를 지켜봐야 했던 사회 전체가 받은 충격을 치유하는 일이 남아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정부가 전 국민의 트라우마 관리에 나서겠다는 취지에서 “국가 트라우마 센터를 중심으로 이태원 사고 트라우마 극복과 심리치료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심리 치료의 최전선인 트라우마 센터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복지부 "트라우마 치료 관련 예산·정책 보완 시급"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보건복지부 예산·정책 현황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이미 트라우마 센터 관련 예산 증액과 정책 보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8월 발표된 ‘국가 트라우마 센터 중심 재난 심리지원 체계 구축 및 역할 정립 방안 연구’ 결과보고서를 토대로 트라우마 치료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보고서에서 지적한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①트라우마 센터의 접근성 문제가 우선 거론됐다. 트라우마 센터는 국가 트라우마 센터 1곳과 △강원권 △영남권 △충청권 △호남권 국립대 병원 4곳에 설치된 권역별 센터가 전부다. 권역별 센터에 갈 수 없다면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으면 되지만, 기초 센터 가운데 재난 정신건강 매뉴얼을 보유한 곳은 56%에 불과하다. 심지어 재난관리 사업 담당자가 아예 없는 지자체도 있다. 이번 참사로 치료를 받으러 인근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아도 적합한 치료를 받을 확률이 절반가량에 불과한 것이다.
구인난 겪는 트라우마 센터..."처우 열악해 공고 내도 안 와"
②인력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태원 참사가 사실상 국민적 재난으로 분류되고 있는데도, 센터에서 이를 담당할 인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국가 트라우마 센터에는 공무원이 9명에 불과하고, 권역별 트라우마 센터에는 3명뿐이다. 그나마 국가 트라우마 센터엔 공무직(무기계약직) 공무원이 19명 있지만, 지역에는 이마저도 없어 단기 기간제 정신건강전문요원들에 의존하고 있다.
처우도 열악하다. 트라우마 센터 관계자는 “처우는 안 좋은데 일은 힘들어 직원들이 나가는데도 충원을 못하고 있다”며 “한 명이 팀을 모두 맡아야 하는 상황이라 회복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는 여건도 안 된다”고 말했다. 국가 트라우마 센터 공무직 직원의 기본급은 217만3,400원이다.
③민간 협력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다. 공공에서 전부 해결할 수 없다면 민간 협력이 필수적인데, 이를 지휘할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정부가 민관 합동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했지만, 근거법과 시행령이 마련돼 있지 않아 신속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尹정부 예산 삭감 기조에 기초 복지센터 예산 18% 삭감
예산과 인력을 추가로 확보할 필요성도 지적됐다. 트라우마 센터 출범 뒤 권역별, 지자체별 센터의 상담 건수가 최근 1년간 평균 40% 늘었는데도, 윤석열 정부의 예산 삭감 기조로 예산은 제자리걸음이다. 트라우마 센터 예산은 2022년 41억6,000만 원에서 내년도에 42억8,300만 원으로 3% 증가했지만,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 예산은 72억3,100만 원에서 58억7,700만 원으로 18% 줄었다.
심민영 국가 트라우마 센터장은 한국일보 통화에서 “안타깝지만 전국 250여 개 기초센터에선 재난 심리지원이 이뤄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기초센터에서 모든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인력과 예산 증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심 센터장은 “응급실이 평상시 환자가 없다고 폐쇄할 수 없는 것처럼 트라우마 센터가 본연의 역할을 하려면 평소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도 입법 보완에 나섰다. 강선우 의원은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는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어, 재난 트라우마 심리지원 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정신건강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수도권을 비롯한 권역별 트라우마 센터 확충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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