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피해자 지원 반대 국회 청원 5만 넘어
"참사에 세금 지원 관례처럼 굳어" 주장에
"세월호는 되고 이태원은 왜 안 되냐" 비판도
삼풍 참사 때는 정부·서울시가 보상금 절반 이상 지원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에 대한 국가 지원을 반대하는 국회 국민청원이 공개 일주일 만에 목표치인 5만 명을 달성했다. 대규모 재난에 정부 지원이 관례처럼 반복되며 관료 실책을 덮는 데 쓰인다는 주장인데, 대형 재난과 관련한 정부 지원을 둘러싼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6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는 '이태원 사고와 관련 상황의 세금 사용에 관한 법률 개정에 관한 청원'이 게재돼 5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국회 국민청원은 동의 5만 명을 달성하면 국회 관련 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附議)할 수 있다.
청원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이번 참사와 관련한 사망자의 장례비를 최대 1,500만 원까지 지급하고, 이송 비용도 지원한다. 또 부상자도 건강보험재정으로 실치료비를 우선 대납한다.
청원을 낸 김모씨는 "이태원 사고는 그 유가족에게는 슬프고, 참사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런 대규모 인원의 사상자 발생으로 기사화되고 이슈화될 때마다 전‧현 정부의 독단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으로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청원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나의 세금이, 우리 부모님의 세금이, 국민의 세금이 이렇게 쓰여 가는 것이 이제는 관습이 된 것 같고 악습이라 부를 때가 된 것 같다"라며 "대규모 사상자 발생 건의 금전적 지원을 비롯해 이번의 이태원 사고 장례비용과 치료비 지원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은 공개된 후 온라인에서 찬반 여론이 극명히 나뉘고 있다. 먼저 "저 안타까운 죽음에 정부 지원금 반대하는 니들이 사람 맞냐?"(late***), "세월호는 되고 이태원은 왜 안 되냐. 야박스럽다"(dhho***)는 의견과 "장례비는 몰라도 지원금은 반대한다"(spac**)는 부분 찬성론이 있다.
반면 "국가 보상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게 지급되는 게 맞다"(tj02**)는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정부의 섣부른 지원 발표가 국민을 갈라치기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이태원 참사 반나절도 안 돼 정부나 언론에서 지원금 얘기부터 꺼내는 건 너무 천박한 일"이라며 "피해자와 국민을 이간질시키는 일이고, 본인들(정부) 책임에 대해 눈 돌리려는 수법"이라고 질타했다.
사회적 참사에 특별재난지역 선포 11번째
정부는 과거 10차례 사회적 참사에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고 피해자를 지원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특별재해지역(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것이 시초다. 그해 6월 29일 참사가 났고, 21일 만인 7월 19일에 선포됐다. 당시 1,439명(사망 502명·부상 937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백화점 부지와 그 주변 지역을 포함한 6만7100㎡가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됐다.
그 외에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인명 피해 17명)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인명 피해 340명) △2005년 4월 강원 양양 산불(인명 피해 없음) △2007년 12월 유조선 허베이스 피리트호 유류 유출사고(인명 피해 없음) △2012년 10월 ㈜휴브글로벌 구미 불산 누출사고(인명 피해 1만2,248명)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인명 피해 304명) △2019년 4월 강원 동해안 산불(인명 피해 3명) △2020년 3월 대구·경북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2022년 3월 경북·강원 산불(인명 피해 없음) 등 9차례 더 있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민간 기업의 부실 건물 증‧개축이 사고의 궁극적 원인이었지만, 정부와 서울시는 2,000억 원 이상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정부와 서울시 등은 △사망자 1,905억 원(502명) △부상자 1,004억 원(714명) △물품 피해 607억 원(841건) △스포츠회원권 170억 원(834건) △차량 피해 12억 원(249대) △주변 피해 59억 원(153건) 등 총 3,758억 원을 보상했다. 특별재해지역을 선포한 정부가 지원금 500억 원을 내놨고, 삼풍백화점이 자산을 매각해 1,484억 원을 마련, 나머지 1,774억 원은 서울시가 냈다. 민간 기업의 사고였지만 정부와 서울시 관리부실 책임도 있는 만큼 절반 이상의 보상‧지원금을 내놓은 셈이다.
참사 피해자들 "이태원 골목은 국가 사업장...정부 지원해야"
기존 대형 참사의 피해자, 희생자 가족들은 이번 이태원 참사 역시 정부의 책임이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광배 전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정부의 모든 재원이 세금에서 나오는데, 행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에 국민 혈세가 쓰인다는 비판은 앞뒤가 안 맞는 지적"이라며 "이번 참사는 행정력 부재에서 비롯된 만큼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충분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인 이선민씨는 지난 3일 KBS라디오 '주진우의 라이브'에서 "국가 책임론을 빼자는 이야기가 많다. 그럴 거면 우리가 왜 세금을 내고 이 나라에 같이 사는지 모르겠다"고 지원 반대 의견에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저는 이태원 골목이 국가의 사업장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구멍가게 안에서 사고가 나도 그 사업장 운영자가 책임을 지는데 국가의 골목이지 않냐"며 "저희는 세금을 내고 이용하고 있다. 그럼 마땅히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탓하는 일부 반응에도 강한 불쾌감을 토로했다. 그는 "요즘에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를 이야기하면서 '거기 왜 놀러 갔냐'고 하고 개인의 책임론을 자꾸 들고 나온다. 그런데 (삼풍 붕괴 사고 때) 저한테 아무도 삼풍백화점에 왜 갔냐고 하지 않았다. 그게 상식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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