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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광부 지혜와 동료애, 민관군 노력이 만든 기적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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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광부 지혜와 동료애, 민관군 노력이 만든 기적의 드라마

입력
2022.11.07 04:0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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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 2명 구조까지 221시간 사투]
'우당탕' 전기 끊기고 구조할 갱도 막혀 고립
구조대, 사고 반대편 수갱 통해 24시간 작업
암석에 막히고 천장 무너져 '거북이 전진'도
틀린 도면 탓 시추 실패도… 1145명 분투해
생환 광부들 "반드시 구조될 것이라 믿었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사고로 고립됐던 작업자 2명이 10일 만인 4일 오후 11시 3분쯤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서 갱도를 나오고 있다. 소방청 제공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사고로 고립됐던 작업자 2명이 10일 만인 4일 오후 11시 3분쯤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서 갱도를 나오고 있다. 소방청 제공

경북 봉화 아연광산 매몰사고 고립 광부 2명이 221시간 만에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물과 불, 최소한의 음식을 활용한 베테랑 광부의 생존기술과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에 가용자원을 총동원한 구조당국의 노력이 어우러져 ‘221시간의 기적’이 연출됐다.

지난 4일 오후 11시 3분쯤 봉화군 소천면 성안엠엔피코리아 금호광산 제2수직갱도(수갱) 입구에 조장인 선산부 박정하(62)씨와 후산부(보조작업자) 박모(56)씨가 작업복 차림으로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동료와 구조대원의 박수갈채 속에 구급차에 오른 이들은 1시간 20분 거리에 있는 안동병원에 입원했다. 이들은 9일 하고도 5시간이나 칠흑 같은 갱도 안에 고립됐던 사람들치고는 비교적 건강했다.

두 사람이 무사히 생환했지만 갱도 안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박정하씨 등은 갱도가 매몰되자 지하 공간 이곳저곳을 살폈으나 탈출구가 모두 막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구조당국과 동료들이 반드시 구하러 올 것이란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처음 사흘 동안은 믹스커피 30봉지를, 이후에는 물만 마셨다. 물이 떨어지는 곳을 찾았기 때문에 물은 충분했다. 15도 이하의 추위를 피하려고 비닐을 찾아 움막을 치고 장작불을 피웠다. 광산을 파고들어간 2개의 갱도 높이가 달라 공기가 자연순환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산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젖은 나뭇조각은 작업 때문에 챙겨 간 산소용접기로 말렸다. 전기가 끊겨 쓸 수 없게 된 커피포트의 발열부를 떼어낸 다음 장작불로 물을 데우는 데 썼다. 고립사실을 알리려고 화약 20개도 터뜨렸다. 배터리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헤드랜턴도 교대로 필요할 때만 켰다. 이 모든 것이 조장 박정하씨의 지혜와 동료애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광산경력 27년으로, 사고가 난 금호광산을 그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박정하씨는 “처음 하루는 배가 너무 고팠으나, 그 이후엔 아무 느낌이 없었다”고 했다. 고립 10일째에 희미해지던 헤드랜턴 배터리가 방전되면서 절망감도 몰려왔지만, 바로 그때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21시간의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봉화 광산 매몰사고 구조 상황. 그래픽=김문중 기자

봉화 광산 매몰사고 구조 상황. 그래픽=김문중 기자

사고는 지난달 26일 오후 6시 광산 제1수직갱도(수갱)에서 “쿵쿵” 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했다. 당시 이곳에선 광부 7명이 방치된 갱도에 채광을 재개하기 위해 레일작업 등을 하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지하 46m 갱도에서 갑자기 900여 톤(회사 측 추정)의 펄 형태의 고운 모래가 30여 분간 쏟아졌다. 지하 300m까지 인력과 장비, 광석을 운반하는 엘리베이터 2대와 각종 시설물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됐다. 지하 150~160m 아래 갱도는 모두 막혔다. 7명 중 2명은 자력으로, 3명은 자체 구조대에 의해 구조됐지만, 지하 190m 지점에서 작업 중이던 박정하씨 등 2명은 고립됐다.

자체 구조에 실패한 광산 측은 다음 날 오전 8시 34분쯤 119에 신고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광해광업공단 등은 4개 조 28명의 광산구조대를 편성해 사고가 난 제1수갱 반대편의 제2수갱을 통해 24시간 쉼 없이 구출통로 확보에 나섰다. 경북소방본부와 중앙119구조본부 등도 갱도를 막은 낙석 등을 광차로 밀고 끌며 날랐다.

구출통로 확보는 난항이었다. 갱도가 오랫동안 방치됐던 탓인지 곳곳이 큰 암석으로 막혀 있었다. 하루 전진 거리가 3m밖에 안 되는 날도 있었다.

사고 발생 8일째인 지난 2일 큰 고비가 닥쳤다. 대피예상 공간으로 가는 갱도가 완전히 막혔기 때문이다. 다만 막혔을 것으로 예상했던 상단 갱도는 의외로 양호했다. 고립자들은 상단 갱도를 통해 최종 구출됐다.

11월 3일 마지막으로 갱도를 막은 구간에 도달했다. 예상 폐쇄 구간은 30m로 3일은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작업 중 천장이 무너지면서 어렵게 확보한 통로가 3m나 후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낙석이 심하지 않아 마침내 4일 오후 11시 통로를 확보하고 30m를 전진하자 비닐 움막과 장작불 빛이 구조대원들 눈에 들어왔다.

결과적으론 무위에 그쳤지만, 생존 확인을 위해 지상에서 실시한 시추작업에도 12대의 천공기 등을 총동원했다. 사고 발생 4일째인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한 시추작업은 두 차례 연속 실패했다. 부정확한 도면이 주원인으로 지목됐다.

가족들은 지난달 31일 해외출장을 마치고 현장에 도착한 이철우 경북도지사에게 신속한 구조를 호소했다. 이날부터 경북도는 행정부지사를 현장에 상주시키며 구조상황을 관리하도록 했다. 정부도 민간장비는 물론 군 시추대대의 천공기까지 대거 투입했다. 정부와 군, 민간에선 매몰사고 이후 1,145명(소방 397명, 광산 관계자 218명, 경북도 27명, 봉화군 81명, 경찰 43명 등)의 인원과 68대의 장비를 동원했다.

필사적인 구조 노력이 통했는지 지난 3일 오전 천공기가 잇따라 우회 경로인 램프웨이 갱도를 뚫는 데 성공했다. 내시경 카메라를 내려보냈다. 카메라에 마이크와 스피커도 장착해 소리를 질렀다. “박정하씨, 이 소리가 들리면 대답하세요. 어려우면 돌로 두들겨 주세요”라는 식으로 외쳤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한때 물소리와 다른 질감의 규칙적인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물소리로 판명됐다.

이렇다 할 반응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구조대는 미음과 음료, 해열진통제, 식염포도당, 간이보온덮개, 그리고 “아버지 사랑합니다.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라는 가족들의 편지를 시추공을 통해 내려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밤 늦게 기적의 소식이 들려왔다. 221시간의 구조 작전은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


안동= 정광진 기자
봉화= 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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