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작 3> 문지혁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편집자주
※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5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이지적인 문체와 묵직한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문지혁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에는 엽편과 단편을 아울러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여기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갑작스레 닥친 불행을 주축으로 전개된다. 예고 없이 찾아와 삶을 뒤흔드는 개인적‧사회적 재난. 그 곁에 살아남은 이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비극의 궤적을 추적해간다. 도무지 파악되지 않는 이 세계의 ‘인과율’을 끈질기게 탐지하고자 하는 것. 어째서 비극은 생겨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누군가는 여객기가 추락한 바다로의 다이빙을 거듭하다 “지금 가고 있어”라는 말만을 남긴 채 그 깊은 곳에 스스로를 묻고('다이버'), 누군가는 호수에 빠져 죽은 아이를 생각하며 매일같이 물속에 동전을 던진다('폭수'). 신실한 애도는 기어코 어떤 기적을 불러내기도 하는 법인지. “동전이 떨어진 수면 근처에서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하얀색 물보라가 수직으로 솟아”오르는('폭수') 장면을 목도하게도 된다. 비록 환상에 가까운 것이라 할지라도, 이로써 산 자는 또 잠시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자주 ‘패턴’을 깨고 불행을 들이미는 이 난폭한 세계를.
몇몇 작품은 지금 여기가 아닌, '통합세기 219년'과 같은 먼 미래 낯선 인공행성을 배경으로 한다. 그럼에도 추념의 정서는 다르지 않고, 때때로 사실주의에 기반한 그 어떤 작품보다 오늘날의 현실적 맥락을 뚜렷하게 재현한다. 그만큼 실재한 사건의 세목을 정밀히 뜯어본 결과로, 이 또한 문지혁의 탁월함이라 할 수 있겠다.
애도와 읽고 쓰는 일에 대한 고민을 긴밀히 연결시킨 점 또한 이번 작품집의 특기할 만한 대목이다. 읽고 쓰는 일, 그리고 ‘책(비블리온‧biblion)’에 대하여. 30여 년 전 일어난 붕괴 사고를 잊지 않은 누군가는 경험을 기록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고('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쓴다는 건 뭘까’, ‘책으로 남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와 같은 질문이 작품집 전반에 흐른다. 이는 결국 “읽는 동안만큼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책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다음 페이지가 되기를” 열망하는 문학적 전언으로 이어진다. 제대로 쓰는 일, 동시에 제대로 사는 일에 대한 진중한 사유가 순도 높은 울림을 준다. “죽지 않을 사람”은 없고, 그렇다면 여기 남은 삶의 ‘빈칸’에 우리는 무엇을 적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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