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칠레, 100년을 향한 MZ세대의 대화

편집자주

우리는 중남미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는가. 빈곤, 마약, 폭력, 열정, 체게바라? 인구 6억2,500만 명. 다양한 언어와 인종과 문화가 33개 이상의 나라에서 각자 모습으로 공존하는 중남미의 진짜 모습을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가 전해준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73세 한 총리 영접한 36세 대통령
젊고 야심 가득한 칠레 정치인들
수교 60주년, MZ세대 교류 기대

지난달 한덕수 국무총리는 한·중남미 수교 60주년을 맞아 중남미 3개국, 칠레·우루과이·아르헨티나를 순방했다. 칠레는 세계 최대의 구리 생산국이자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ECLAC) 사무소 주재국, 한국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남극 세종기지 설치국, 우루과이는 올 하반기 남미공동시장(MERCOSUR) 의장국, 아르헨티나는 리튬 매장량 세계 3위, 생산량 세계 4위, 한국 옥수수 수입 물량의 40%, 대두유 수입 물량의 33%를 차지하는 국가다.

첫 방문국 칠레에서 한 총리는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을 면담한 후 '지속 가능한 광업 및 밸류체인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 대응해 배터리 등에 들어가는 핵심 원재료 공급선 다변화를 위한 포석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73세의 한 총리를 마주한 보리치 대통령은 1986년생, 올해 36세다. 그는 조지오 잭슨(35세), 카밀라 바예호(34세) 등과 함께 2011~2013년 칠레 학생 시위를 주도했다. 이들은 칠레 엘리트 대학의 양대 산맥인 칠레가톨릭대학교와 칠레대학교 학생회 임원 출신으로, 현 칠레 정치마당의 핵심 인물들이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칠레는 나이를 묻지 않는 문화다. 직장에서도 서로 이름을 부른다. 부장님, 팀장님, 교수님, 박사님, 호칭으로 계급을 나누지 않는다. 직급은 각자가 맡은 업무의 동의어다. 카페, 식당, 클럽, 공연장, 선호도의 문제일 뿐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나이에 따라서 가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나이가 대화의 주제가 되는 일은 드물다. 스페인어에서 너(tú)와 당신(usted)은 나이에 따른 존칭보다 사회적·개인적 거리 표현에 가깝다.

보리치 대통령은 어려서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랐고 K팝 그룹 스트레이 키즈와 트와이스를 즐겨 듣는다. 가끔은 자전거를 타고 대통령궁으로 출근한다. 어디 보리치 대통령뿐이랴, 중남미 밀레니얼 세대 중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고 자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1년에서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지칭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혁신에 대한 준비가 된, 그리고 다양한 범주의 제품을 온라인 및 매장 채널을 혼합해 구매·사용하는 세대다. 2022년 브라질 은행은 약 90%의 중남미 밀레니얼 세대가 온라인쇼핑과 디지털뱅킹을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997년에서 2012년 사이, 디지털 세계에서 태어난 Z세대도 중남미 판매자와 의사 결정권자의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스태핑 아메리카 라티나(Staffing América Latina)에 따르면 이들은 실용주의자이며 개인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기고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여 브랜드를 구축, 자유롭고 진실한, 그리고 안전한 디지털 경험을 기대한다.

물론 경험과 연륜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젊은 정치인들이 이끄는 칠레는 지금 지독한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미숙하고 실패로 좌절을 겪으며 이어진 그들의 시행착오는 발전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터다. 중남미는 자원의 보고이자 한국의 CPTPP(11개 멤버국 중 멕시코 칠레 페루 등 중남미 3개국) 가입과 EXPO 2030(BIE 멤버국 중 중남미 28개국) 유치 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이다. 그리고 한국이 협상해야 할 대상은 미래의 소비자, 젊은 그들이다.

우리 외교부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는 이달 말 한국과 칠레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 행사를 연다. 중남미에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MZ세대의 참여를 유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서로를 조금은 더 가까이 느끼는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어른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