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성서 속 창조, 혼돈 극복과 질서의 역사
구원의 핵심은 공동체 속 관계의 회복
창조주 최고 행위는 혼돈을 정리한 것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세기 1:1)."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기사부터 시작한다. 무에서 유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 창조 이야기는 더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다.
창세기 첫 장의 기록은 초궁극의 기원 사건을 말하지 않는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한처음에 '깊음'이 이미 있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1:2)." 깊음은 태고의 바다며 물이다. 성서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문헌도 창조가 발생하기 전에는 이 혼돈의 물이 있었던 것으로 말한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바다나 강과 같은 물은 혼돈과 공포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이 혼돈을 타파하고 정리하여 '질서'를 끌어내는 것이 창조의 과정으로 그려졌다.
하나님은 혼돈의 물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셨다(1:6)." 구름과 비가 있는 하늘의 물과 땅의 물로 정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땅에 있는 물은 아직 흙과 뒤섞여 범벅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땅의 물도 경계선을 만들어 정리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곳으로 모이고, 뭍은 드러나거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고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1:9-10)."
성경의 첫 장이 말하는 창조는 이렇게 혼돈을 극복하고 질서를 끌어내는 역사였다. 인간의 터전을 가능케 한 최고의 선물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심판할 때는 이 창조의 과정을 뒤집어 버렸다. 질서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다시 하늘과 땅, 물과 흙을 뒤범벅되게 하였다. 노아의 홍수가 대표적 사례다. "바로 그날에 땅속 깊은 곳에서 큰 샘들이 모두 터지고, 하늘에서는 홍수 문들이 열려서,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땅 위로 쏟아졌다(7:11-12)." 하늘과 땅에 그리고 뭍과 바다 사이에 있었던 경계선이 무너져 버리고 서로 범람해 역창조가 벌어진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창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뭔가 새것을 만드는 생산적 작업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엉킨 실타래나 뒤범벅된 흙탕물 같은 내면과 공동체의 혼돈을 하나하나씩 풀고 정리하여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핵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절대자와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간의 부서졌던 관계를 고치고 세워서 바른 질서를 도래케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었다. 반대로 보자면 우리에게 재앙은 내면과 공동체의 질서가 무너지고 혼돈으로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다.
질서라는 창조적 진보가 도래하려면 혼돈을 타파하는 수고와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성경의 이야기는 이 메커니즘을 본문의 표면 아래 회로처럼 작동시킨다. 히브리 노예들이 억압에서 자유를 얻는 창조적 진보는 그 직전에 혼돈을 상징하는 물, 즉 홍해를 가르고 건너는 최대 위기를 겪고 나서야 찾아왔다. 그들이 이후에 광야에서 방랑하다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정착하는 창조적 진보도 그 직전에 또다시 혼돈을 상징하는 물, 즉 요단강을 건너고 나서야 이뤄졌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도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창조적 질서는 마지막 환란이라는 혼돈 타파의 위기를 겪고 나서야 도래했다.
성서의 지혜를 따르자면, 우리 삶의 새롭고 축복된 시간은 반드시 혼돈을 극복하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성서학자는 이를 '산고(birth-pang)'로 비유한다. 극한 배앓이를 하고 나야 새 생명이라는 축복이 온다. 우리가 마음잡고 시험공부를 하기 전에는 책상 정리부터 하지 않던가? 주저앉는 혼돈이 있었다면 새로운 질서가 찾아올 길이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창조는 혼돈을 이기고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창조주 최고의 행위는 혼돈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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