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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무례를 건너는 방법

입력
2022.11.11 2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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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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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는 화가 났다. 함께 일했던 이의 무례 때문이었다. 화는 슬픔으로 이어졌고 어느 날에는 치욕스러웠다. 참는 마음이 부족해 이 사람 저 사람 만날 때마다 그의 무례에 대해 말했다. 심장이 두근대고 숨조차 쉴 수 없었다고, 소화가 되지 않아 병원 신세까지 졌다고, 나의 말을 들은 한 친구가 보이스피싱 당한 셈 치라고 했다고, 그제야 떨리던 심장이 가라앉고 숨을 제대로 쉬었다고, 그러니 그는 얼마나 나쁜 사람이냐고, 이 나이 되도록 사람 볼 줄 모르는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이 일었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다른 사람을 만나 또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물론 내 안에 있는 화를 풀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왜 당신은 나에게 이렇게 무례한가, 묻지 않았다.

언젠가 상대의 변심으로 계약이 파기됐을 때 나는 한동안 그를 비난하는 말로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러다 더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워졌을 때 심리상담사를 찾아가 그를 비난했다. 관계의 절망에서 나는 외로웠고, 피폐해지고 있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괴롭혔다. 어찌하여 나는 아직도 뒤에서 험담이나 하는 것인가. 상대와 맞붙지도 못하면서.

평론가 신형철의 시화(詩話)집 '인생의 역사'를 읽다 인용한 이성복 시인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약점을 옮기고 다니면 내가 약하다는 증거예요. 그 사람의 비밀을 지켜줘야 그 사람을 싫어할 자격이 있어요.' 그에 대한 침묵을 지킬 자신이 없는 나는 더 쥐구멍을 찾아들고 싶었다. 물론 나의 이 치졸하기 짝이 없는 감정을 그와 이성복 선생의 문학관에 함부로 갖다 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이 문장이 들어와 나를 살리고 있었고, 이성복을 읽은 신형철의 글들이 나를 살리고 있었다.

시골에 들어와 책방을 하면서 나는 말했다. 텃밭을 가꾸면서, 매일 변하는 숲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배운다고. 시골책방에 찾아오는 이들의 그 소박한 마음을 통해 배우고 또 배운다고. 그래서 매일 나는 새롭게 태어난다고.

그러나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야말로 뼈저리게 느꼈다. 하청받은 일이니 젊은 날 밥벌이할 때처럼 촉각을 곤두세웠다. 조금 거창하게 지역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어쨌든 돈 몇 푼 벌자고 한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다시 저 시궁창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몇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의 속 좁음이 한없이 부끄럽다고, 부디 내가 했던 말들을 잊어달라고. 그러나 이것은 또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얼굴은 더 화끈거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머리를 뒤흔들고 나는 다시 '인생의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말처럼 읽을수록 한없이 '비참'해졌지만 읽지 않으면 나는 더없이 '비천'해질 것이므로.

책에 빠져드는 동안 상대로부터 받았던 무례의 순간들이 먼지처럼 털어지고 내 안의 내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었다. 마당에 나가자 비로소 이곳의 바람소리가 들렸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상대는 자신이 무례한지조차 모를 것이다. 나는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당신이 내게 한 행동은 예의가 아니었다고. 초겨울 햇살이 등을 따끈하게 했다.


임후남 시인·생각을담는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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