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전통시장] <1> 세종전통시장
분식점 반찬가게 인기 끌며 손님 7할 외부서
시장 빈 점포 문의 급증… 외국인도 자주 찾아
인구 감소에도 전통시장 덕에 지역경제 '활기'
"시장 옆 문화공간 조성… 젊은이 유입도 기대"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 5일 세종시 조치원역 광장. 경부선의 중간역이자 충북선의 기점이 되는 교통의 요지로 꼽히지만 역 주변은 한적하다 못해 썰렁했다.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여느 지방의 소읍 풍경이다. 그러나 맞은편 세종전통시장(옛 조치원시장)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서울 광장시장 먹자골목이나 부산 국제시장에서 느낄 법한 활기가 넘쳤다. ‘쇠락한 조치원’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오십리 밖에서 오는 손님들
세종 신도시에 살면서 이날 시장을 처음 찾았다는 김성호(38)씨는 “평소 생각했던 전통시장 풍경과 달리 사람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며 “고향인 부산의 국제시장보다 더 붐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먹거리를 파는 분식집과 반찬가게는 줄을 서지 않고선 일을 보기 힘들 정도로 북새통이었다. 10년째 이곳에서 장사 중인 치킨집 주인은 “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손님 60~70%가 조치원 바깥 사람들”이라며 “그중 8할은 세종 신도시, 나머지는 청주 등지에서 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세종 신도시(세종시청)에서 이곳 조치원까지 거리는 20㎞ 이상이고, 오송은 5㎞, 서청주는 10㎞ 이상 떨어져 있다. 특히 청주에는 시장 규모나 판매 실적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육거리종합시장이 있지만, 그 시장을 뒤로하고 경계선을 넘는 청주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에서 시장을 찾은 김종오(49)씨는 “작년에 우연히 들러 간식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 맛과 시장 분위기를 잊을 수 없어 다시 조치원을 찾았다”고 했다. 세종 신도시에서 매주 밑반찬을 사러 온다는 30대 주부도 “한번 장을 보면 한 주가 든든하다. 무엇보다 신도시 절반 수준 가격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세종시가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인 만큼 이곳에는 맞벌이 부부를 겨냥한 반찬가게 경쟁력이 특히 높았다. 반찬가게들은 시장에서 식자재를 조달한다.
인근 공단 공장과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들도 세종전통시장의 큰손이다. 조치원읍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외식은 큰 부담"이라며 “조치원 거주 외국인 노동자를 1,6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대부분 시장에서 식자재를 구입해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다”고 말했다.
빈 점포 나오면 바로 계약되는 전통시장
조치원은 쇠퇴하는 동네다. 조치원역 이용객은 2014년 432만 명에서 2019년 346만 명으로 20%가량 줄었다. 인구도 2014년 4만7,000명이 넘었지만, 올해는 4만2,000명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처럼 쇠락하는 도시에서 전통시장의 가치는 남다르다. 읍사무소 관계자는 “신도시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낙후했고, 그 때문에 인구가 줄고 있지만 전통시장 덕분에 생기가 유지된다”고 말했다.
인구가 줄어도 시장이 활력을 잃지 않고, 시장 덕에 지역경제가 돌아가는 배경에는 시장통에 자리 잡은 맛집들의 역할이 크다. 맛집에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면서 주변 상가 매출에 도움을 주고, 그 파급 효과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된다.
세종전통시장 지원센터의 장재희 매니저는 “오래전부터 몇몇 분식집이 유명했고, 그 때문에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더욱 다양한 메뉴의 점포와 맛집이 탄생하는 선순환 효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곳은 파닭치킨의 원조이고, 호떡, 떡볶이, 튀김, 짜장면 등을 파는 분식점의 인기는 '전국구' 수준이다.
시장에 활기가 돌면서 세종전통시장에선 공실이나 폐점포를 찾아보기 힘들다. 시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만큼 시장 밖 상가보다 시장통 점포가 선호되기 때문이다. 시장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통시장 내 빈 점포를 찾는 문의가 꾸준하게 들어온다”며 “빈 점포가 나오면 바로바로 나간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시장 내 신축 상가 분양 광고 현수막까지 걸렸다. 전통시장이 대형마트 공세로 밀리는 상황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전통시장 옆 문화시설 활력소 될까
세종전통시장이 다른 지역 시장과는 다른 모습을 띠고 있지만, 이 같은 분위기가 10~20년 뒤에도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젊은이들이 시장 방문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형성된 뒤 250년 동안 지금처럼 손님들의 평균연령이 높았던 적은 없다. 특히 잘나가는 전국의 전통시장이 공통적으로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유명 관광지를 끼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세종전통시장은 한계가 분명한 셈이다. 세종시 관계자는 “주차장과 가족센터 등 편의시설을 늘리고, 상인회와 공동마케팅도 하고 있다. 오후 1시까지 주문하면 당일 오후 배송하는 온라인 주문서비스까지 시작했지만, 젊은이들 반응은 신통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종시는 전통시장 주변에 조성한 문화공간에 기대를 걸고 있다. 서울 선유도처럼 정수장을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 ‘조치원 문화정원’, 대중목욕탕과 여관으로 쓰이다 주민과 청년 예술가들의 문화놀이터로 거듭난 ‘청자장’, 1927년 지어진 제지공장을 활용해 만든 ‘조치원 1927아트센터’가 대표적이다. 전통시장 인근에 마련된 이런 시설들을 찾는 청년들이 많아지다 보면 전통시장으로 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결국 시장과 지역 경제, 문화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세종전통시장 최연소 사장’ 백강열(37)씨는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젊은 시장이 되기 위해선 점포 주인들의 생각과 사고도 젊어져야 한다"며 "주차장을 만들고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비스 마인드 제고 등 시장 상인들의 의식과 인식 개선을 위한 지자체와 정부의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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