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못 타지만 가족에 알려질까 병원 안 가"
직접 피해자 아니면 치료 필요 없다는 관념도
"빨리 치료받을수록 회복 기간도 그만큼 줄어"
20대 직장인 여성 A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 이유 없는 불안 증상을 겪고 있다. 사고 피해를 당한 당사자도 아니고, 가까운 지인 중에 피해자도 없다. 하지만 이전엔 익숙하던 출ㆍ퇴근길 지하철이나 공연장 등 사람 많은 공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대중교통 대신 택시를 타고 귀가한 적도 있다.
국민적 충격을 안긴 이태원 참사로 간접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충격의 강도에 비해 전문병원이나 상담센터를 찾아 치료받는 시민은 많지 않다. 정신과 진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여전한 탓이다. A씨는 14일 “정신과 진료를 받는 자체가 솔직히 신경 쓰인다”며 “혹여 연말정산 과정에서 의료비 지출 내역을 가족이 볼지 몰라 병원 예약을 못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유족 등 참사와 직접 관련된 부류만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치료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이모(29)씨는 “참사 후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두근거려 스마트워치로 심박수를 재어 보니 분당 120회까지 치솟았다”면서 “하지만 참사 희생자나 가족도 아닌데 유난 떠는 게 아닌가 싶어 치료를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정신과 치료를 꺼리는 경향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통계 자료를 보면, 전체 진료비 지출 중 정신건강의학과가 차지하는 비율은 4.5%에 그쳤다. 5년 전(2.9%)에 비하면 1.5배 높아졌지만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0%)에도 한참 못 미친다. 당시 OECD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극단적 선택 비율이 최고 수준이지만 정신건강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 의심 증상이 지속될 경우 의료기관이나 전문 상담센터의 문을 하루라도 빨리 두드려야 그만큼 회복 기간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6일 회원들에게 “이태원 참사 관련 환자는 최우선으로 예약을 받아주는 등 신속히 진료해 달라”고 권고했다. 재난 직후 불안, 분노 등의 감정이나 심장 두근거림이 정상적 애도 반응인지,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지 판단이 서지 않으면 정신건강상담전화(1577-0199)에 문의해 사전 진단을 받아볼 수도 있다.
정부 역시 “일반 시민들도 심리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국가트라우마센터를 통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특정 사건과 관계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심리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센터 홈페이지에 게시된 자기평가 척도를 활용해 상담 및 치료 여부를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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