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조용하지만 더 치열해진 글로벌 특허전쟁과 기술경쟁. 기술을 확보하고 특허를 선점하는 것이 곧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핵심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혁신·벤처기업들. 이들이 탄생하고 제대로 커나가기 위해서는 투자가 중요한데, 투자의 성패를 가르는 것 역시 특허다. 기술·아이디어가 얼마나 참신한지, 또 시장에서 독점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특허가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허는 혁신·벤처기업의 존망을 좌우하지만, 국내에서는 제아무리 우수한 특허라도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허의 최종 가치는 결국 소송에서 결정되는데,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혁신·벤처기업 10곳 중 9곳은 제대로 특허소송을 해보기도 전에 포기한다고 한다. 1심에만 평균 600일 넘게 소요되니, 기간·비용 부담이 너무 커서 감히 싸워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혁신·벤처업계는 '특허침해소송에서 변리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출원부터 권리화, 심판에 이르기까지 믿고 맡겨온 변리사가 이미 있는데, 정작 침해소송에서는 대리인으로 쓸 수 없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법정에서 기술적 쟁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방청석의 변리사에게 쪽지로 변론 내용을 전달받고, 그나마도 소화하지 못하여 변론기일을 재차 연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업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주요 선진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내년에 출범하는 EU 통합특허법원의 설립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논의 초기,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과 같이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문제를 두고 EU에서도 변호사-변리사 간 갈등이 첨예했다. 그러나, 노키아·아스트라제네카 등 세계적 기업으로 이뤄진 '지식재산 기업 연합'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결국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허용하였다. 영국은 1990년부터, 일본은 2002년부터 산업계 요구에 따라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허용하였다.
17대 국회부터 계속 논의되어온 '변호사-변리사 공동대리' 법안이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다. 변호사는 반드시 참여하되, 법률소비자가 원할 경우에만 변리사를 추가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기에 변호사가 배제되지 않는다. 기업에는 선택 폭이 넓어지고 소송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중소 로펌과 청년 변호사에게는 소수 대형 로펌이 독점하던 특허소송시장이 열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모든 것엔 적절한 때가 있다. 쌀밥을 짓다가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면 새카맣게 탄 재만 남을 뿐이다. 급변하는 기술혁명 시대, 글로벌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혁신·벤처기업을 위해 이제 국회가 결단할 때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