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판결은 재판받는 사람에게만 효력이 있지만, 대법원 판결은 모든 법원이 따르는 규범이 된다. 규범화한 판결은 일상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판결과 우리 삶의 관계를 얘기해본다.
부모 봉양에도 상속 제외된 중년 여성
헌법소원도 제기된 논란 많은 유류분
일부 폐해 있지만 여전히 필요한 제도
최근 유류분 소송에서 의뢰인과 함께 소송대리인으로서 법정에 나갔다가 재판장으로부터 '아버지가 자기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줘준 것을 갖고 자식들이 왜 소송을 제기하여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장녀로서 동생들을 돌보고 부모님이 연로한 이후에는 남동생들보다 더 부모님을 돌보았던 의뢰인은 재판장의 그 얘기가 가슴에 사무쳤던지, 법정 밖에 나와서도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장녀로서 나름 충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였는데, 정작 상속을 거의 받지 못하게 되자 무시받은 것 같아 조금이라도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불효자가 되어 버린 것 같다고 필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근 유류분 제도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여러 건 제기되었다. 부모가 자기 재산을 나눠주는데 왜 자식들이 재산 싸움을 하느냐, 유류분 제도가 가족을 원수로 만든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유류분 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가 아니다. 프랑스, 독일 및 다른 유럽 국가, 일본, 대만 등 많은 나라가 유류분 제도를 갖고 있다.
프랑스의 유류분 제도는 게르만법을 이어받았다. 가족공동체가 지배하던 사회인 게르만에서 망인의 재산은 가족에 속한다는 관념이 강했다. 혈족만 상속할 수 있었고, 유언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언이 나타난 것은 로마법과 교회법의 영향이었다. 교회는 기부를 장려하였고, 이는 게르만의 가족공동체 해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기부를 제한한 것이 바로 유류분이었다. 현재 프랑스 민법은 망인의 유산을 유류분과 자유 처분 가능한 유산 두 부분으로 나누고 있고, 유언자는 유언 시 반드시 직계비속 및 배우자를 위하여 유류분을 남겨 두어야 한다.
독일의 유류분 제도는 로마법의 의무분 규정을 이어받았다. 로마공화제 말기 가정제도가 붕괴되고 유언자유가 남용되어 망인의 근친이 유산을 상속할 수 없게 되자 망인의 근친을 부양하기 위한 의무분제도가 발생하였다. 독일 모델의 유류분 제도는 유산의 자유처분을 기초로 하되, 직계존속, 직계비속, 배우자에게 모두 유류분이 인정된다. 프랑스와 독일의 유류분 제도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대만 등 많은 나라의 상속법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은 원래 유언자가 유언으로 자기 소유 재산을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38년 상속법은 망인의 배우자 및 자녀에게 부양비를 제공할 것을 명하면서 유언의 자유를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1975년 상속법도 망인이 유언 시 자신이 부양했던 가족 구성원이나 피부양자를 위하여 합리적 범위의 부양비를 제공하지 않으면 법원에 부양비 제공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권리를 가지는 사람은 피상속인의 배우자, 전 배우자, 자녀, 동거인 등 광범위하다.
미국도 많은 주에서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한 비용을 유족이 우선 지급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이러한 비용은 유언보다 우선시될 뿐만 아니라 상속재산의 채권자보다 우선시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유족이 기본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많은 제도를 두고 있고, 배우자에게는 유류분도 인정하고 있다.
가족의 재산은 어느 한 사람이 전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라고 볼 수 없다. 부모가 사망하더라도 남은 가족은 그 재산으로 생존하여야 하고 부모의 사망 전 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유류분 제도가 시작되었고 필요한 제도이다. 다만 유류분 제도 시행을 통해 노출된 일부 폐해는 법개정을 통해 보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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