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작 10> 조해진 '완벽한 생애'
편집자주
※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5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작가 후기에 밝히고 있듯이 '완벽한 생애'는 조해진이 2019년에 발표한 동명의 단편소설을 다시 쓴 장편소설이다. "윤주의 주변인물로만 등장했던 소설 속 미정이 자주 생각나"고 "마음에 빚이 있는 속 깊은 친구 같고 현재의 그녀가 나름의 방식으로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그려 보다가 다시 쓰게 된 소설. 그러니까 포착되지 못한 프레임 밖의 이야기, 소설 이후의 이야기다.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번외편. 먼저 발표된 단편을 읽지 않아도 무방하니 독자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작가를 위한 번외편. 왜 조해진은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가. 왜 그 인물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는가.
윤주는 도망치듯 미정이 있는 제주로 간다. 미정이 제주에 있을 수 있었던 건 보경 언니의 권유 때문이다. 윤주가 미정에게 갔기 때문에 시징은 윤주의 방에 머물 수 있었다. 시징이 윤주의 방이 있는 영등포로 온 것은 옛 애인 은철 때문이고 은철은 홍콩에서 시징의 방에 머물렀다.
윤주는 시징을, 미정은 윤주를, 보경 언니는 미정을, 보경 언니의 딸은 보경 언니를 각기 다른 공간으로 불러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이곳으로 떠민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불행들이다.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나눠주면서 그곳은 더 이상 잠깐 머물고 마는 '이상한 대기소'가 아니다. 공간의 공유는 그곳에 살고 있는 이의 생애와도 겹치는 순간이다. 그렇기에 '단순한 게스트'가 아니라 '친밀한 타인'이 된다.
'시징, 영등포에서 포구를 찾았나요?' 영등포라는 지명이 영등굿이 행해지는 포구에서 유래했다는 말을 남긴 시징에게 윤주는 마음속으로 쪽지를 남긴다. "그러나, 그런 곳이 있다고 믿는 희망은 기만적입니다."
그러나 소설의 끝을 읽고 나면 이 장면은 전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온다. 지금은 딴판이고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변해 버렸으나, 그곳을 더듬다 보면 기적처럼 어디선가 짠내를 맡을 수 있으리라는 것, 그래서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기적.
조해진은 오랫동안 고통을 응시해 왔다. 그 결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인간에의 연민, 타인의 고통에의 공감을 극까지 끌어올렸다. 그 고통의 응시는 그 너머에 있는 희망에 대한 믿음과 확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새로 쓰는 시간을 생각한다. 불행한 인물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시간, 마침내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 그렇게 수많은 시간들을 통과한 뒤에 조해진의 소설은 되돌아오고 있다. 처음 간 길과 달리 돌아오는 길의 풍경은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기꺼이 그 길에 동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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