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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적 유연성을 얻으려 분투한 작가의 슬픔 온전히 느껴져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 송지현]

입력
2022.11.22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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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심사경위]

11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열린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참석한 심사위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상수 강동호 박혜진 문학평론가, 전성태 윤성희 하성란 소설가, 박소란 시인. 이한호 기자

11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열린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참석한 심사위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상수 강동호 박혜진 문학평론가, 전성태 윤성희 하성란 소설가, 박소란 시인. 이한호 기자

심사위원들은 한 달여간 후보작들을 검토한 소회를 밝히는 것으로 심사의 문을 열었다. 인상적으로 읽은 작품들 서너 편에 대한 짧은 감상을 곁들인 가벼운 대화였지만, 본심에 오른 거의 모든 작품들이 골고루 언급되었다는 사실에서 한국 소설의 스펙트럼이 다채롭게 확장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화기애애한 심사 분위기와 달리 수상작을 결정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자의 개성과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들 덕분에 심사위원들은 본격적인 논의 대상을 결정하기 위해 두 번의 표결 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 결과 김멜라의 ‘제 꿈 꾸세요’, 송지현의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임솔아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그리고 조경란의 ‘가정 사정’에 대한 집중적인 토론을 이어갈 수 있었다.

김멜라의 ‘제 꿈 꾸세요’는 퀴어, 장애 등과 관련된 사회적 억압과 불평등 문제를 비판적으로 제기하면서도, 현실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인물들의 생명력을 마술적인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작가의 순도 높은 긍정의 에너지 속에서 유머를 겸비한 지적인 성찰까지 번뜩인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이다.

송지현의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은 청년 세대가 경험하고 있는 빈곤과 불안을 다루고 있지만, 특유의 담백하고 위트 넘치는 어조를 통해 비애와 절망에 짓눌리지 않는 인물들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송지현의 싱겁고 가벼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중간중간 피식 웃게 되겠지만, 그 웃음 뒤에 밀려오는 페이소스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 서사적 유연성은 미래 없음에 대처하는 이 시대 청춘들의 정신적 태도와 전략을 사랑스럽게 반영하고 있다.

11일 한국일보에서 열린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한호 기자

11일 한국일보에서 열린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한호 기자

임솔아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는 모든 것을 그만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절망적인 인물들이, 그 비관의 한가운데에서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믿음과 의지를 회복해가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생의 단단하고도 단호한 의지와 결합된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밀도 높은 고민 또한 그 자체로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조경란의 ‘가정 사정’은 사람들의 일상과 생활에 배어 있는 아픔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작가의 내밀하고 섬세한 시선이 돋보였다. 그의 작품은 소설이 갖추어야 할 품격과 품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범례라고 할 수 있는데, 인생의 고통 그 자체에 육박해가는 소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성찰적 아름다움의 경지를 그의 소설은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의 소설을 읽고 모종의 경의를 표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거듭된 논의와 최종 투표 끝에 심사위원들은 송지현의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심상한 이야기들을 심드렁하게 전달하는 그의 소설이 그 서사적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쳐야 했을 우울과 슬픔의 시간을 심사위원들에게도 온전히 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상자에게 아낌없는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심사위원 일동 (대표집필 강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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