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겨울 시작… 한파에 전력 수요 급증
러, 에너지시설 또 폭격… "1,000만 명 단전"
'겨울 협상론' 급부상… 우크라·러는 미온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17일(현지시간) 첫눈이 내렸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길고 혹독한 인고의 시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러시아가 파괴한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시설은 겨울을 날 만큼 충분히 복구되지 않았다. ‘겨울 종전 협상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이유다.
영국 가디언과 BBC방송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날도 우크라이나 전역 주요 도시를 동시다발적으로 폭격했다. 15일 러시아가 개전 이래 최대 공격을 퍼부은 여파로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방공미사일 오폭 추정 사고가 벌어진 지 이틀 만이다.
러시아 미사일은 또다시 우크라이나 에너지시설을 노렸다. 중부 드니프로에선 천연가스 생산 공장과 미사일 제조 공장 등이 공격당했고, 10대 청소년을 포함해 23명이 다쳤다. 드니프로강 중류에 위치한 니코폴에도 태양열 전기 변전소 등에 러시아 포탄이 날아들어 수천 가구에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자포리자 인근 빌냔스크에선 아파트가 폭격당해 최소 7명이 숨졌다. 키이우를 비롯해 서부 빈니차, 남서부 오데사, 북동부 수미 등 주요 도시들도 전력 공급을 받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러시아는 군사시설 대신 에너지시설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공습 규모가 커지고 빈도도 잦아졌다. 가디언에 따르면, 10월 이후 국지전 이외 대량 폭격만 6차례였다. 우크라이나를 추위와 암흑에 빠뜨려 항전 의지를 꺾으려는 전략이다. 러시아 의도대로 키이우에 눈이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에너지 위기는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 국영 전력기업 우크레네르고는 “갑작스러운 한파로 최근 전기가 복구된 지역에서 전력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지역에선 전력 고갈에 대비해 어쩔 수 없이 강제 비상 정전도 실시하고 있다. 최근 탈환한 남부 요충지 헤르손에선 주민들이 식량과 이불, 겨울옷 등 보급품을 받기 위해 몰리면서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심야 대국민 연설에서 “최근 우크라이나 국민 1,000만 명이 전기 없이 생활하고 있다”며 “테러리스트 국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더 큰 고통을 가져오길 원한다”고 맹비난했다.
최근 서방 언론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종전 협상론’이 제기되는 배경에도 우크라이나 에너지 문제가 있다. 생존에 필요한 난방과 수도, 전기 없이는 전투는커녕 일상 유지도 어렵다. 러시아 무기보다 겨울 한파가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러시아가 헤르손에서 퇴각하며 궁지에 몰린 지금이 협상 적기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로부터 직접적인 협상을 원한다는 신호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개 협상을 하자”고 역제안했다. 이달 들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우크라이나에 입국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면담한 이후에 나온 발언이라, 미국이 물밑에서 협상 재개를 타진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대화가 시작될지는 불투명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포함해 모든 점령지에서 철군할 때까지 평화협상은 없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닌 후임 지도자와 협상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승전 의지도 굳세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개 협상 제안을 일축하며 “협상을 거부한 건 우크라이나이며 그 결과가 바로 이것(공습)”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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