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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사람 아냐" 개그서 조롱받던 몸매, '근수저'로 감탄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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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사람 아냐" 개그서 조롱받던 몸매, '근수저'로 감탄 반전

입력
2022.11.22 14:30
수정
2022.11.22 18: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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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김민경, 다큐가 된 운동 예능으로 호평
태극 마크 달고 국제 실용사격 대회 출전
"철심 박은 왼쪽 발목에도 고된 체력 훈련 포기 안 해"

김민경이 19일 태국에서 열린 2022 ISPC 핸드건 월드슛 대회에서 사격하고 있다. 한국 대표로 출전한 그가 입은 경기복엔 'KOREA'란 문구가 박혀 있다. IHQ 영상 캡처

김민경이 19일 태국에서 열린 2022 ISPC 핸드건 월드슛 대회에서 사격하고 있다. 한국 대표로 출전한 그가 입은 경기복엔 'KOREA'란 문구가 박혀 있다. IHQ 영상 캡처


김민경이 19일부터 태국에서 열린 2022 ISPC 핸드건 월드슛 대회 경기장에서 안내 책자와 경기장을 비교하며 코스를 살피고 있다. IHQ 영상 캡처

김민경이 19일부터 태국에서 열린 2022 ISPC 핸드건 월드슛 대회 경기장에서 안내 책자와 경기장을 비교하며 코스를 살피고 있다. IHQ 영상 캡처

"아 유 레디?" 한국이란 뜻의 영문 'KOREA'가 등에 큼지막하게 박힌 셔츠를 입은 선수는 "삐" 소리가 울리자마자 오른쪽 허리춤에서 기다렸다는 듯 총을 꺼냈다. "탕, 탕, 탕!" 그는 세 과녁을 향해 총 아홉 발을 연달아 쏜 뒤 왼쪽으로 달려가 다시 총을 쐈다. 반동에도 그의 상체는 요동치지 않았고 어깨너비로 벌린 두 다리는 땅에 뿌리를 내린 듯 흔들림이 없었다. 뚝심이 느껴지는 선수는 김민경(41). OTT 바바요의 예능 프로그램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 제작진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 속 모습이다.

한국의 코미디언은 19일 태국 파타야에서 열린 국제실용사격연맹의 사격 대회(2022 ISPC 핸드건 월드슛)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출전했고, 22일 기준 나흘째 경기를 치르고 있다. 태극 마크를 단 김민경의 모습에 누리꾼은 "태릉이 놓친 인재를 결국 회수했다"며 환호했다. 이 대회엔 50여 개 나라에서 1,6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했고 김민경이 출전한 '프리 매치'는 24일까지 열린다.


김민경이 예능프로그램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실용사격을 배우고 있는 모습. 비비탄으로 연습하는 그의 표정이 진지하다. IHQ 제공

김민경이 예능프로그램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실용사격을 배우고 있는 모습. 비비탄으로 연습하는 그의 표정이 진지하다. IHQ 제공


"쉬고 와서 죄송"하다는 코미디언

여성 코미디언이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기까지의 과정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김민경은 처음엔 과녁도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 좌충우돌을 딛고 그가 비비탄으로 훈련을 거듭할수록 중구난방이던 탄착군은 좁혀졌다. 그의 팔은 갈수록 거뭇거뭇해졌다. 야외에서 3~4kg의 묵직한 산탄총으로 훈련한 화약의 흔적이었다. 5년 넘게 '먹방'에 주력하다 건강을 위해 "하기 싫은 운동"을 시작한 그가 총을 잡을수록 예능은 '다큐'처럼 변했다. 코치진의 집중 지도를 받은 김민경은 지난 6월 국제대회 출전 자격이 주어지는 레벨4 시험을 통과한 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여성부 최종 2인으로 발탁됐다. 그가 처음 총을 잡은 뒤 1년여 만에 얻은 성과였다.

김민경이 예능프로그램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장총으로 사격 훈련을 받고 있다. IHQ 영상 캡처

김민경이 예능프로그램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장총으로 사격 훈련을 받고 있다. IHQ 영상 캡처

실용 사격은 장애물이 놓인 코스를 따라 이동하면서 목표물을 맞혀야 해 민첩성뿐 아니라 체력도 함께 받쳐줘야 한다. 태국에 머물고 있는 김준기 대한실용사격연맹 감독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김 선수가 훈련하다 다치기도 하고 예전에 왼쪽 다리 수술을 받아 발목에 철심이 박힌 상황에서 고된 체력 훈련을 하다 보니 힘들었을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훈련 과정을 들려줬다. "처음엔 예능이라 진정성을 의심했는데 어쩔 땐 너무 힘들어해 가서 좀 쉬라고 하면 '다들 훈련하는데 쉬고 와서 죄송하다'고 하는 모습에 진실함도 느꼈다"는 게 김 감독 말이다.

김민경이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그는 주 공격수였다. SBS 방송 캡처

김민경이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그는 주 공격수였다. SBS 방송 캡처


김민경이 예능프로그램 '마녀들'에서 야구선수로 변신해 타석에서 배트를 잡고 있다. MBC 방송 캡처

김민경이 예능프로그램 '마녀들'에서 야구선수로 변신해 타석에서 배트를 잡고 있다. MBC 방송 캡처


김민경이 '골프 여제' 박세리와 허벅지 싸움을 하는 모습. 승자는 '근수저'였다. MBC '나 혼자 산다' 영상 캡처

김민경이 '골프 여제' 박세리와 허벅지 싸움을 하는 모습. 승자는 '근수저'였다. MBC '나 혼자 산다' 영상 캡처


'근수저'가 주는 해방감

김민경은 축구(SBS '골 때리는 그녀')와 야구(MBC '마녀들' 시즌2) 그리고 종합격투기('운동뚱')까지 운동마다 숨겨둔 재능을 보여줬다. 격투기를 배우러 간 그가 찬 발차기 한 번에 관장은 바닥으로 나뒹굴었고, 필라테스의 어려운 동작도 척척 해내는 유연함에 강사는 그를 '척추요정'이라 불렀다. 웃기지 못한 코미디언 김민경이 재발견된 순간이다.

삼수 끝에 2008년 KBS 공채 코미디언으로 선발된 그는 정작 '개그콘서트'에선 주목받지 못했다. '생활의 발견'(2011~2013)에서 송중근과 신보라가 연인의 위기 상황을 다양하게 연기할 때 김민경은 보조출연자로 나와 주로 먹기만 했다.

또 다른 코너 '억수르'(2014)에서 김기열은 김민경을 향해 "우와, 사람 아니야"라고 소리를 지른다. 김민경의 손목이 한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이 코너에서 김민경은 억수르의 딸 '마르다' 역을 맡았다. 마르지 않은 그는 비만으로 희화화되면서 병풍처럼 쓰였다. 그랬던 김민경이 무대 밖으로 나와 운동으로 조롱의 대상이던 '몸'을 향한 편견에 균열을 낸 것이다. 타고난 근육으로 '근수저'란 별명까지 새로 얻은 김민경의 몸은 '운동뚱'에선 한숨 대신 감탄의 대상이다. 누리꾼이 김민경의 도전에 몰입하며 자존감을 찾고 해방감을 느끼는 배경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 사회에서 몸은 깨작거리지 말고 잘 먹어야 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살을 빼야 한다고 강요받는 모순의 이중고에 놓여 있다"며 "김민경이 근수저 서사로 이 아이러니를 부쉈고, 여성의 몸을 주체화해 몸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끌어냈다"고 분석했다.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인 '생활의 발견'에서 김민경(뒤)이 웃으며 음식을 먹고 있다. 그는 이 코너에서 주로 먹는 손님으로 나왔다. KBS 영상 캡처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인 '생활의 발견'에서 김민경(뒤)이 웃으며 음식을 먹고 있다. 그는 이 코너에서 주로 먹는 손님으로 나왔다. KBS 영상 캡처


김민경의 차엔 축구화와 야구배트, 총 그리고 골프채 등 운동 기구가 가득하다. 사진은 지난해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 출연 모습.

김민경의 차엔 축구화와 야구배트, 총 그리고 골프채 등 운동 기구가 가득하다. 사진은 지난해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 출연 모습.


'기회의 사다리' 상징으로

'근수저 김민경'은 기존 부캐 열풍과 달리 자아 찾기에 가깝다. '시켜서' 한 운동으로 그는 불혹(40세)을 코앞에 두고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 김헌식 카이스트미래세대행복위원은 "운동으로 기회의 사다리를 찾은 김민경은 기회의 불평등으로 잠재적 역량을 찾을 수 없는 청년 세대에 희망의 상징처럼 여겨진다"며 "그래서 더 청년들이 응원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민경은 "어떤 분은 내가 코미디언인 줄 모르고 운동선수인데 예능을 하는 사람인 줄 알더라"며 "나로 인해서 용기를 내는 분들이 많다고 해 더 열심히 (실용 사격 훈련을) 했던 것 같다. 나를 통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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