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확진 1500명 육박...사상 최대치
공공시설 셧다운... 최대 번화가 기괴한 적막
아파트도 봉쇄... 검사소에만 사람들 모여
21일 오후 6시 중국 수도 베이징의 싼리툰 거리. 이곳은 쇼핑몰과 술집, 클럽이 밀집해 있어 '베이징의 이태원'으로도 불린다.
대형 쇼핑몰에 들어서자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이 내뿜는 불빛으로 곳곳이 번쩍번쩍 빛났지만, 인적은 깊은 산골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뚝 끊겨 있었다. 상점 간판 불은 켜져 있었으나 영업하는 곳은 없었고, 아무도 올라타지 않은 에스컬레이터도 혼자서 분주히 움직였다. 의미 없는 빗자루질을 해대는 청소부만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조명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의 수도, 그 안에서도 '핫 플레이스'라는 싼리툰은 '화려한 폐가' 그 자체였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베이징이 다시 닫히고 있다. 22일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중국 전체 감염자는 2만7,307명으로 전날보다 1,270명으로 증가했다. 베이징 확진자는 1,438명으로 집계됐다. 보름여 전인 지난 5일만 해도 두 자릿수(49명)를 유지했던 확진자 규모가 무려 30배가량 급증하며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산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시 닫히는 베이징...방역 완화서 '유턴'
이에 따라 베이징시 당국은 22일 자정을 기해 확산 속도가 가장 빠른 차오양구 내 모든 상점과 사무실에 폐쇄 조치를 내렸다. 식당 영업도 중단됐으며,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회사 업무는 재택근무로 전환됐다. 슈퍼마켓과 병원 정도를 제외한 모든 공공시설이 문을 닫은 것이다.
싼리툰의 한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대학생 2명과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베이징이 또 셧다운(폐쇄)됐는데, 짜증나지 않느냐"고 물으니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느냐"고 답하며 대뜸 "한국에서도 마스크를 쓰냐"고 되물어왔다. "지금은 쓰지 않아도 된다. 한국은 위드 코로나로 전향했다"고 설명했더니, "그러면 한국은 코로나19 감염자가 중국보다 적은 것이냐"며 갸우뚱한 표정이다. 지난 3년간 제로 코로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위드코로나의 개념조차 그리지 못하는 듯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3년 전쟁'은 패퇴를 거듭하고 있다.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에는 우한시 등 주요 확산 지역에 전면 봉쇄를 단행해, 그해 9월 "코로나19 전쟁에서의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산발적인 확산이 지속됐고, 올해 들어선 오미크론 변이라는 결정타를 맞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치적 성과로 포장된 제로 코로나를 포기할 수 없었던 중국은 '상하이 봉쇄'로 상징되는 '끝장 방역'을 펼쳤지만, 방역 전쟁에서 결국 승리하지 못했다. 그사이 중국이 얻은 게 있다면 '경제 위기'라는 부작용뿐이다.
시진핑의 3연임 확정 후 중국도 입국자 격리 기간을 축소하고, '정밀 방역'을 강조하는 등 제로 코로나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급격한 바이러스 재확산세에 방역 수위는 재상승하고 있다. 여러 부작용이 확인됐지만, 당장 급한 불을 끄려고 실패한 카드를 다시 꺼내는 셈이다.
주거·사무지도 '꽁꽁'...PCR 검사소만 분주
봉쇄는 번화가든 주거지든 예외를 두지 않았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차오양구 왕징 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아파트 관리인에게 "봉쇄된 동(棟)이 어느 쪽이냐"고 물으니, "여기저기 다 봉쇄됐는데, 어떤 동을 말하는 것이냐"는 답이 돌아왔다.
봉쇄된 아파트 현관엔 바리케이드가 설치됐고, 중국에서 다바이(大白)로 불리는 흰색 방역복을 입은 요원들이 주민들에게 제공할 식료품을 분주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단지 내 슈퍼마켓도 출입도 금지돼 있었다. 주민들은 굳게 닫힌 슈퍼마켓 철문 앞에서 자신이 주문한 물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알리바바, 포스코, 에어차이나 등 대기업들이 모여 있는 왕징 중심상업지구(CBD)는 유령도시를 방불케 했다. 빌딩 사이 어디에도 직장인들은 보이지 않았고, 대다수 건물 출입문은 철근 자물쇠에 묶여 있었다. 빌딩 숲 사이에 길게 뻗은 6차선 도로를 다니는 차도 보기 드물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 중국인이라면 매일 같이 들러야 하는 유전자증폭(PCR) 검사소뿐이었다. 베이징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교민은 "장사도 못 하고 움직일 수도 없는 답답함보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 더 답답하다"며 한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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