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의원 46명, 정치개혁 연속 토론회
"의석 배분 비례성 높이는 선거제 시급"
민주당 이상민 등 선거법 개정안 발의
"경북 지역에 사는 민주당 지지자는 투표했던 후보가 한 번이라도 당선되는 것을 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누구의 표는 살아 있고, 왜 누군가의 표는 죽어야만 할까요. 득표율만큼 의석을 배정하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합니다."(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
"지금 정치권에서는 상대를 찌르고 넘어트리는 '터프가이'만이 당의 지도자가 되고 있습니다. 정쟁을 유발하는 승자독식형 정치 구조를 끝내야 합니다."(김병욱 국민의힘 의원)
25일 대구 신천동 대구무역회관에서 '승자독식 정치 극복'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9월부터 여야 국회의원 46명이 함께 주최하고 있는 '초당적 정치개혁 연속토론'의 일환으로, 이날은 특히 양당제를 공고히 하는 원인으로 꼽히는 현행 소선구제 개혁 방안이 논의됐다. 앞서 18일에도 전남 광주에서 같은 주제의 토론회가 개최됐다. 거대 양당의 텃밭인 두 도시에서 양당 정치와 지역주의를 극복하자는 일치된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소선구제의 대안으로 1개 선거구에서 복수의 당선자를 뽑는 중대선거구제가 거론됐다. 강민구 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은 "대구와 전남의 경우 총선에 4인 선거구 이상이 도입되면, 경쟁 정당의 후보가 당선돼 지역주의가 완화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중대선거구제 도입 필요성을 호소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중대선거구제의 목적에는 공감하면서도 "많은 선거비용이 드는 탓에 정치 신인의 참여가 제약되는 문제는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18일 토론회에 참석한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옳은 말을 하는 다른 정당의 후보들도 유권자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소선구제를 폐지해야 한다"며 "공직선거법상 총선 12개월 전까지 선거제도를 바꿔야 하는 만큼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22대 총선은 내후년 4월 10일 치러진다. 적어도 내년 4월까지는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 개혁의 화두를 실행에 옮기려면 시간이 많지 않은 셈이다.
선거도 선거지만, 지금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더 이상 '양당 정치'의 폐해를 방치할 수 없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정치가 갈수록 양극화하면서 정쟁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서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가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다당제의 정착을 막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도 거대 양당이 극단적 지지층에 휘둘리면서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의 영역이 실종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김찬휘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는 "다당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결국 선거의 비례성을 확대해서 유권자 뜻을 국회에 골고루 반영하자는 취지"라며 "원내에 활동하는 당이 늘어날수록 연대와 합의의 정치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대선거구, 지역주의 타파에도 도움
다당제 정착을 위한 핵심 과제는 선거제도 개편이다. 최근에는 그 대안 중 하나로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1개의 선거구에서 1명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사표 발생 가능성이 크다. 사표가 많을수록 각 당의 득표율과 실제 의석 점유율이 괴리되는 단점이 두드러진다. 단적인 사례가 지난 총선 당시 정의당의 의석 배분이다. 정의당은 지역구에서 전국 평균 1.71%의 득표율을 기록했음에도 실제 지역구 의석은 1석에 불과했다. 만약 득표율대로만 의석을 배분한다면 최소 4석을 받을 수 있었다.
참여연대가 발행한 '21대 총선, 유권자 지지와 국회 의석 배분 현황' 이슈리포트에 따르면 전체 2,874만 표 가운데 자신이 찍은 후보가 당선되지 못한 이른바 사표는 1,256만 표로 무려 43.7%에 달한다.
중대선거구제는 이런 문제를 일부 해소할 수 있다. 한 지역구에서 2~3인(중선거구) 또는 4인 이상(대선거구)의 당선자를 선출하면, 기존 소선거구제에서는 낙선했을 2등, 3등 후보도 당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에 제3, 4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이 확대된다. 게다가 특정 정당의 지지층이 공고한 지역에서 다른 당 후보의 당선 기회가 커지는 만큼, 지역주의 타파에도 도움이 된다.
초라한 지선 시범실시 성적표
우리도 중대선거구제를 적용해보자는 실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6·1 지방선거가 그 시험대였다. 여야는 4월 기초의원 선거구 30곳에 한해 중대선거구제를 시범실시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 아닌 정당이 당선된 사례는 전체 109석 가운데 4석(정의당·진보당 각 2석)에 불과했다. 거대 양당이 중대선거구에서 복수의 후보자를 공천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예컨대 5인 선거구였던 충남 논산시(가)에서 민주당은 5명, 국민의힘은 4명이나 후보를 내면서 당선을 싹쓸이했다. 기득권 정당들이 다당제를 정착시키겠다는 중대선거구제 도입 취지를 앞장서 거스른 셈이다. 그 결과 이 지역의 제3당 후보는 정의당 1명뿐이었다.
당시에도 소수당을 중심으로 "거대 양당의 복수공천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났다. 복수공천 제한은 정당활동의 자유를 제한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반론에 묻힌 것이다.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양당의 결단이 없으면 중대선거구제는 정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여야 의원 공히 "기득권 내려놓자"
그럼 중대선거구제 실험은 실패한 것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우선 지난 지방선거 때는 중대선거구 도입 결정이 선거를 불과 두 달 앞두고 결정돼 소수당의 준비 기간이 부족했다. 소수당의 지지층이 지역별로 상이한 만큼, 전국 단위에서 전면 실시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기득권 정당의 '위성정당' 꼼수로 좌초한 가운데, 양당 정치를 극복할 방법으로 중대선거구제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도 중대선거구제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는 배경이다.
이미 국회의원 선거에도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달 4일 이상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지역구 국회의원 127명을 중대선거구제로 선출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또 지역구 의원수만큼 선출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도입했다. 이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 대해 "군소정당의 등장은 지방 소멸을 막는 대안이 될 수 있고, 다양한 지역 정당의 출현으로 기존 양당 구도가 심화시키는 지역갈등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 개정안에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에서 이명수·이용호 의원, 민주당에서 정성호·홍영표·이원욱·김종민 의원 등이 참여했다.
복수공천 문제 어떻게 풀지가 관건
관건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증명됐듯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더라도 거대 양당의 복수공천 문제를 어떻게 풀지로 모아진다. 법으로 복수공천을 봉쇄하면 정당활동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점이 우선 넘어야 할 산이다. 일각에선 복수공천을 허용하더라도 거대 양당의 독식을 방지할 최소한의 기준선은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려면 거대 양당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문제를 풀려면 거대 양당에만 논의를 맡겨놓아선 안 된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결국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선 정치 개혁이라는 명분을 등에 업고 여론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민 의원은 "현실적으로 당내 설득은 불가능하고, 여론의 압박만이 개혁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며 "양당의 정치 실패가 심화할수록 법안 논의도 탄력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호 의원은 "개혁은 언제나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국민의힘은 영남에서, 민주당은 호남에서 기득권을 포기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의 미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해관계가 첨예한 선거구 획정을 국회가 아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에 맡기는 것처럼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 논의도 제3의 중립적인 위원회가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정치관계법 개정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입법권이 제한되는 측면을 감수하고서라도 개정 주도권을 외부에 위임해야 현실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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