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전통시장]<3>부산 초량전통시장
일제 때부터 상인들 모이며 '반찬의 성지'
50년 된 어묵 점포 매출 60% 외지 재주문
배달 직원 고용에 무료 앱… 전국택배까지
‘초량 미(味)슐랭’ 브랜드 상표등록 출연도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 22일 부산 도시철도 초량역 1번 출구를 나와 30~40m를 걷자 오른편에 ‘초량전통시장’이라고 적힌 장승 모양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장승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자, 평일 오전 시간인데도 손님들 발길이 이어졌다. 초량시장은 1960년 전통시장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부산의 중심이던 초량동에 상인들이 모이면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시장이다.
1990년대 이후 부산의 중심이 서면과 해운대 등지로 옮겨갔지만, 초량시장에선 구도심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분주함이 넘쳐났다.
한번 오면 다시 찾는 시장
오전부터 가장 분주한 곳은 반찬가게 앞. "밥도둑. 맛있는 젓갈류 있어요"라는 문구가 적힌 진열대에는 온갖 종류의 반찬이 보였다. 반찬가게 앞에 있던 희끗한 머리의 김만수씨는 "반찬이 맛있어 한참 떨어진 남구에 살지만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온다"고 했다. 서울과 대전, 대구 등 전국서 택배 주문도 많다. 외지에 살면서 친정이 부산인 여성들도 반찬을 미리 주문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초량시장에서 반찬가게만 20여 년 넘게 운영해온 김두리씨는 "오랫동안 꾸준히 찾는 단골 손님들이 많다”고 했다.
초량시장 내 주요 가게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단골이 많기로 유명하다. 부산의 대표 음식으로 꼽히는 부산초량어묵도 그중 하나다. 1972년 문을 연 초량어묵은 자체 생산공장을 갖추고 시장에서 어묵을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서울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진출한 어묵보다는 전국적 유명세가 덜하지만 초량어묵의 맛은 부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탁준구 대표는 “대량으로 싼 어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재료로 양질의 어묵을 만든다”면서 “시장에 와서 한번 맛을 본 손님들이 다시 찾는 경우가 많아, 매출의 60%가 외지 주문”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인근 ‘텍사스거리’ 외국인들의 재구매도 많다고 한다.
김종진 초량전통시장상인회 회장은 “시장 안에 오래된 점포들이 많아서 단골 손님들이 1년 내내 찾아오는 것”이라며 “단골을 유지하고 새로운 손님을 모시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체 먹거리 개발해 손님 유치전 나서
초량시장은 최근 ‘초량 미(味)슐랭’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상표등록 출연을 진행하고 있다. 첫번째 명물 먹거리는 떡국에 어묵 고명을 올린 ‘어묵떡국’이다. 초량어묵을 비롯해 시장 내에 있는 영진어묵를 활용해 초량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시장 관계자는 "떡국 육수도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해 다른 육수와 차별화하고 있다"며 "떡국은 물론 어묵탕에도 사용할 수 있는 제조법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명란소스도 초량시장이 자신 있게 내놓는 품목이다. 일제강점기 전국 최대 명태 창고였던 남선창고가 있던 곳이 초량동이다. 당시 함경남도 원산에서 잡힌 명태를 부산 남선창고에 모아 전국으로 유통했다. 부산 동구청 관계자는 "일본 명란젓도 부산 초량에서 명란젓을 먹어본 일본인이 후쿠오카에 공장을 세우면서 점차 확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명란의 원조라는 점에 착안해 초량시장이 만든 게 명란소스다. 밥에 넣어 비벼 먹을 수 있고, 초량시장에서 새로 개발한 어묵순대튀김 소스로도 최고라고 상인들은 말한다. 초량시장상인연합회 측은 “상표등록이 되는 대로 시장 안에 별도 판매 공간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판매하고 온라인이나 밀키트로도 공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달 효율성 높이기 위해 삼륜차도 도입 예정
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이려고 초량시장은 무료 배송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부산시가 지난 1월 출시한 부산지역 공공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동백통’에 시장 전체 점포 160여 곳의 25% 수준인 40여 곳이 가입해 780여 개 품목을 무료 배송하고 있다. 직접 배달 직원을 고용해 자체 배달도 실시 중이다. 덕분에 지난 7월 60여 건에 불과하던 주문 건수가 9월에는 5배가 넘는 330건을 넘겼다. 배달 효율을 높이기 위해 조만간 전기 삼륜차도 구입할 예정이다.
초량시장 상인들은 ‘동백통 초량전통시장 배달서비스’라는 문구가 적힌 유니폼을 맞춰 입고 배달서비스를 한다. 배송할 때 이용하는 봉투와 냉동 아이스팩, 보냉백에도 시장 이름과 장승 모양 로고를 넣어 초량시장만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지난 26일에는 부산 전역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초량전통시장 키즈마켓데이’를 열었다. 사생대회와 함께 학생들은 부모와 장보기 체험을 비롯해 각종 공연 관람과 어묵가공박물관 체험 등을 했다. 지역문화관광과의 연계 차원에서 프리마켓을 올해에만 4차례나 열어 부산 전역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리고 했다.
김홍기 초량전통시장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장은 “어린이들이 보다 친숙하게 전통시장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남녀노소 모두 전통시장을 계속 찾아올 수 있도록 다양한 유인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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