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이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된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 공간과 참사 발생 골목은 지금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새 추모글과 국화로 채워지고 있다. 158명이 애꿎게 숨진 국가적 비극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다.
참사 한 달을 맞아 희생자 이주영(28)씨 유족이 편지와 고인의 얼굴 그림을 한국일보에 보내왔다. 이씨는 고양이 캐릭터를 디자인해 문구류 등을 제작ㆍ판매하는 캐릭터 일러스트 작가로 일했다. 내년 가을 결혼을 앞두고 참사 당일 연인과 강남에서 메이크업 등 상담을 위해 외출을 나왔다. 저녁을 먹고 잠깐 핼러윈 축제를 구경하러 이태원에 갔다가 인파에 휩쓸려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주영이에게 쓰는 편지
사랑하는 우리 딸 주영아!
가슴이 찢어지는 이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해야 하니...
매일 밤 "다녀왔습니다"라는 목소리를 들어야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요즘은 왜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니?
왜 이렇게 오랫동안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니?
널 지켜주지 못한 무기력한 아빠가, 우리 가족이 너무 한스럽고 죄스럽구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너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미래를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함께 결혼 허락받으러 왔을 때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예쁜 웨딩드레스는 입어 봤니?
설레는 마음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어 보고 즐거워했을 네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렇게 설레고 즐거워해야 할 네가 왜 그 차디찬 이태원 골목 바닥에 누워 있어야 하는 거니.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단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곁을 떠난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고, 이해할 수가 없구나.
너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슬픔에 하루하루를 괴로워하며 지내는 네 남자친구를 바라보는 것도 너무나 큰 아픔이구나.
사랑하는 우리 딸!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고, 아빠 손을 잡고 결혼식장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며 행복했었는데, 이렇게 큰 슬픔으로 돌아올 줄은 정말 몰랐구나.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너를 꼭 안아주지 못한 이 한심한 아빠를 용서해라.
너를 키우면서 엄마 아빠는 너무 행복했단다. 고맙구나 우리 주영이.
살면서 네가 섭섭했고 힘들었던 것들은 결혼식 전날 아빠가 모두 듣고 용서받고 싶었는데, 끝내 그 시간은 오지 않겠구나.
사랑하는 내 딸 주영아!
이제 널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이 현실이 너무나 기가 막히고 힘이 들지만 넌 항상 우리 가족 곁에 함께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너를 아는 모든 이들이 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단다. 그러니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넌 혼자가 아니야.
무너지는 가슴을 추스르며, 환하게 웃는 예쁜 네 사진 속 모습들을 우리 가족 옆에 두고 항상 함께할 거야.
이젠 아프지도, 슬퍼하지도, 힘들어하지도 말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네가 하고 싶었던 것들, 못해봤던 것들 전부 다 해보고 행복하길 빌게.
몇 번을 불러도, 아니 수백 번을 불러도 그리운 주영아!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너를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와 오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