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도시, 서울]③건물을 잡아라
서울시 개조사업, '얕은 개조' 위주 머물러
런던 등은 에너지 80% 줄이는 '깊은 개조'
국제에너지기구, 건물 매년 2.5% 개조 권고
영국은 에너지 효율 낮은 집 매매 금지도
한국 정부는 그린리모델링 예산 절반 삭감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지난 7, 8월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덴마크 코펜하겐을 방문해 세계 대도시들의 적극적인 탄소감축 성과(30~60%가량)를 확인했다. '탄소빌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서울의 현실(고작 3~8% 감축)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서울과 세계 대도시들의 차이점을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지난 10월 기자가 찾아간 서울의 한 어린이집. 국토교통부의 그린리모델링 사업과 서울시의 건물에너지효율화(BRP)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지난 8월 에너지효율공사를 한 곳이다. 서울시는 이 사업으로 에너지 효율이 30% 올랐다고 홍보했는데, 사실 바뀐 것은 창문과 현관문, 보일러, 환기장치뿐이다.
단열재와 지붕은 그대로이고 태양광 발전 패널도 설치돼 있지 않다. '효율 30% 상승'이라는 수치는 공식 평가 기관인 국토안전관리원의 평가가 아닌 서울시가 내부적으로 추정한 것이다. 공식 평가는 내년 3월에야 나온다. 다만 시 관계자는 "공식 조사에서도 비슷하게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서울시는 2026년까지 이런 어린이집 개조를 628곳 할 예정인데, 이런 식이면 에너지효율이 얼마나 오를지 장담하기 어렵다.
건물은 도시 탄소중립에서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다. 서울시 탄소 배출량의 70%가 건물에서 나온다. 교통·건설·폐기물을 모두 합한 것보다 3배나 많다. 냉난방을 하고, 전기를 사용하는 도시의 모든 생활이 대부분 건물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건물 부문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매년 건물의 2.5%를 개조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노후 건물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과 시장을 만들어야 하지만 서울, 나아가 한국은 세계 주요 국가와 도시들에 비해 양과 질 모두 크게 뒤처져 있다.
'깊은 개조'와 '얕은 개조'
지난 7월 찾은 영국 노팅엄의 한 주택 단지. 낡은 영국 주택들 사이로 튼튼하게 리모델링한 주택들이 서 있다. 창호·단열·지붕을 덧댔고, 지붕 위에는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했다. 가스보일러도 전기 히트펌프로 바꿨다. 에너지 요금을 80% 아낀다. 이 모델은 영국 런던시도 이어 받아 2024년까지 1,600채를 개조하고, 규모를 19만 채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서울 어린이집의 경우와 가장 큰 차이는 ‘리모델링의 깊이’다. 영국은 건물의 단열 자재를 종합적으로 바꾼 반면, 서울은 일부 기자재(창호·문·보일러)를 교체하는 것에 그쳤다. 전자를 ‘깊은 개조(Deep Retrofit)’라고 하고, 후자를 ‘얕은 개조(Shallow Retrofit)’라고 한다. 서울 어린이집은 콘덴싱 보일러로 교체했다고 하나, 역시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기당 효율 개선 폭은 10% 이내다.
이응신 명지대 제로에너지건축센터 교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리모델링을 한 주택에 가스 보일러를 넣는 건 어불성설이다"라고 했다.
건물 탄소중립을 위해선 깊은 개조가 필수다. 업계에서는 창호만 교체할 경우 주택 에너지 성능 변화를 5% 내외로 본다. 창문 주변과 벽의 온도차 탓에 결로·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다. 깊은 개조는 여러 공사를 한 번에 하기 때문에, 설계·가설 비용 등을 추가로 지불하지 않아 효율적이기도 하다.
결국은 돈과 시간이다. 단순 창호만 바꿀 경우 비싸도 수천만 원대에서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 반면 영국 사례 수준의 깊은 개조를 하기 위해서는 1억 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 한다. 또 창호는 2, 3일이면 바꾸지만, 단열과 바닥, 지붕 성능을 개선하는 건 3, 4주 걸린다. 그동안 거주자가 살 곳을 찾는 게 어렵다.
유정민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초기 높은 투자비용과 공사 기간이 깊은 개조의 방해 요인”이라면서도 “깊은 개조가 있어야 실질적인 탄소 감축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도 깊은 개조를 하는 사례가 일부 있다. 경로당 제로에너지빌딩(ZEB) 사업이 그 예다. 예컨대 서울시와 노원구는 지난해 구의 한 노후주택을 구매해 개조, 경로당으로 제공했다. 창호·단열재·지붕을 교체하고 옥상 태양광 발전 패널도 설치했다. 건물 에너지효율등급은 ‘1+++’로 냉난방을 할 필요가 거의 없고, 전기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태양광 발전량이 그를 상쇄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다. 이런 전환은 2021년 7개소, 2022년 12개소에 그쳤다.
한국은 주택개조 최악의 조건
해외에선 꾸준히 나름의 해법을 찾고 정책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해법 중 하나는 공사를 ‘조립식’으로 하는 것이다. 공장에서 창호와 단열재, 지붕을 완성시킨 후, 현장에서는 이를 집에 접붙이기만 한다. 마치 레고처럼 단열재를 덧대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사 기간은 일주일까지, 공사 비용도 35%나 줄였다. 네덜란드에서 출발한 주택 개조 단체 ‘에너지스프롱’이 주도해 시장을 형성한 덕이다. 유럽의 높은 에너지 요금도 주택 개조 필요성에 대한 유인 요소이다.
한국의 조건은 어렵긴 하다. 조립식 공사는 주택 구조가 일정해야 가능한데, 한국은 난개발 영향으로 주택 구조가 중구난방이다. 주택별 노후도도 심각하다.
시공사에 따르면, 창호를 바꾸기 위해 창문을 뜯었더니 창문 근처의 벽돌이 무너져 내리곤 한다. 하중 설계가 제대로 안 된 탓이다. 바닥재를 교체하려고 장판을 뜯었더니 배관이 터져있어서 물이 발목까지 차 있거나, 결로가 있어서 단열 공사를 하려 했더니 애초에 집 구조가 문제여서 바닥을 다 드러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3년째 노후주택 개조를 한 ‘우리집 샬롬’ 유지풍 이사장은 “이런 집은 애초에 급배수설비 도면이 없고 누수 탐지기 같은 기본적인 설비도 없다”며 “집마다 특성이 다 달라 각개 처방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한국은 에너지 비용이 낮아 주택 개조의 경제적 유인이 없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주택정책연구센터장은 “노후 주택을 고쳐야 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신축을 선호하는 문화도 시장 형성이 안 되는 요인 중 하나”라고 했다.
그 결과 한국 주택 리모델링 비율은 매우 낮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건축물 착공 면적(약 135㎢) 중 주거 리모델링 면적은 0.4%(0.63㎢)에 불과했다. 86.6%(117㎢)가 신축이었고, 리모델링은 13.4%에 불과했다. 리모델링 중에서도 상가·사무실 등 비주거가 96.4%를 차지했다.
반면 서울 건물 약 59만3,000동 중 47.5%(28만2,000동)가 30년 이상 노후됐으며, 35년 이상 된 주택은 신축보다 1㎡당 에너지를 4.6배 많이 쓴다. 양도 많고, 개선 의 여지도 많아 국토연구원은 “노후 단독주택이 그린리모델링의 핵심”이라고 지적하지만, 시장에서는 찬밥 신세다.
건물 에너지 효율화, 일반의 인식도 뒤처져
국내는 건물 에너지 효율에 대한 일반의 인식 자체도 낮다. 앞서 국토부는 기자가 찾아간 어린이집의 그린리모델링을 위한 사전 컨설팅을 했다. 어떤 공사가 필요할지 건축 전문가가 설계 전 검토하는 절차다. 여기서는 창문 교체 외에도 △지붕 △외단열(화강석) △고효율 냉난방장치 등이 필요할 것으로 권고됐다.
그러나 이런 권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공사를 마치려면 2, 3주가량 걸리는데 어린이집 운영에 차질이 생겨 운영자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사업을 맡은 구청도 이를 강하게 설득하지 않았고, 사업 예산도 한정적이어서 결국 창문 교체 선에서 결론이 났다.
익명을 요구한 구청 관계자는 “국토부의 사전 컨설팅은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론을 냈다기보다는 피상적으로 일단 필요한 설비를 전부 적어둔 것에 불과하다”며 “실제 어린이집 사용자와 논의 끝에 결정했다”고 했다. 국토부는 "컨설팅은 가장 이상적인 개조 안을 제시하는 것이며 세부 내용은 공사가 진행되며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이 어린이집은 시공 중 창문을 뜯자 벽돌 사이 단열재가 텅 비어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시공사가 창문을 뜯은 김에 단열 공사도 할 것을 권고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유럽은 극약 처방, 우리도 가야 할 길
영국은 2018년부터 아예 에너지 효율이 낮은 집(주택 에너지 성능 등급 E등급 미만)은 매매·임대를 할 수 없게 했다.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극약처방이다.
대신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을 편다. 영국 정부는 2019년 주택 개조에 10년간 약 92억 파운드(약 14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효율을 측정한 전문가들이 어떤 부분을 어떤 순서로 공사해야 가장 에너지·비용이 효율적일지를 조언해주기도 한다.
유럽 싱크탱크 RAP의 리처드 로이스 선임 연구원은 “영국은 ‘집은 곧 개인의 성채’라는 관용구가 있을 정도로 집의 소유권에 대한 인식이 강하다”며 “그럼에도 탄소중립의 필요성 탓에 주택 부문에 대한 규제를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2020년 유럽연합(EU)은 매년 건물 전체의 2%를 리모델링하겠다고 발표했다. 2030년부터다. 현재는 전체 건물의 1% 정도가 리모델링되고 있다.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은 "한국 역시 탄소중립 로드맵을 분석하면 2030년부터는 건물 2%가 매년 리모델링돼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 기준 매년 약 8,700채가 리모델링돼야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 에너지효율화사업은 843채에 그쳤다.
떠들썩했던 '그린 뉴딜' 정권 바뀌자 반 토막
그러나 국내 리모델링 정책은 되레 후퇴하고 있다. 2020년 정부는 '한국판 그린뉴딜'을 발표하며 국토부의 그린리모델링 예산을 4,805억 원으로 크게 올렸다. 2019년 예산은 93억 원이었다. 그러나 올해 정권이 바뀐 후 국토부가 내년 예산을 2,045억 원으로 채택해 57.4%가량 삭감했다.
서울시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난 4월 ‘저탄소 주택 100만 호 전환사업’을 발표했다. 2026년까지 주택 100만 호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국토부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그린리모델링 사업도 포함돼 있다.
이 중엔 노인정·어린이집 등 시가 예산을 들여 공공시설의 에너지 성능을 크게 개선함으로써 리모델링 시장을 형성하고, 민간에까지 그 영향이 흘러가도록 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
그러나 ‘100만 호’라는 포부와 달리, 정책 세부는 빈약하다. 관련 예산은 올해부터 5년간 2026년까지 1조5,650억원을 책정했으나, 그중 절반 이상(8,044억원)이 2025년에야 집행된다. 무엇보다 100만 호 중 82만 호가 단순 기자재 교체다. 열 효율이 조금 더 높은 콘텐싱 보일러로 교체 70만 호, 고효율 LED 조명 교체 12만 호다. 이는 창호 교체보다도 얕은 수준의 개조다. 건물 에너지 성능을 높이지도 못하고, 리모델링 시장을 형성하는 효과도 제한적이다. 보일러만 교체한 주택을 ‘저탄소 주택’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서울시의 경로당 개조 설계를 맡았던 잘그린건축연구소의 민현준 소장은 "국내에도 깊은 개조를 위한 기술이 있지만 신축에 비해 개조에 쓰이는 예산 자체가 너무 적다"며 "자재 개발, 작업자 양성, 경제성 확보 등을 생각하면 탄소중립이 매우 늦었음에도 '급하다'는 인식 없이 시간이 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탄소빌런, 서울
①서울만 뒤처졌다
②태양광 좌초시키기
③건물을 잡아라
④온돌과 히트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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