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현장 바로 앞... 충격 여전한데 감찰까지
"슬픔·고통 계속되지만 기댈 존재는 동료뿐"
인사 시즌 앞두고도 잔류하겠다는 직원 늘어
“떠나지 않고 이곳에 남기로 했습니다. 견뎌보려고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A씨가 뜻밖의 말을 건넸다. ‘이태원 참사’ 후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 “용산에서 나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였다. 그러나 정작 연말 인사철이 다가오자 마음을 고쳐 먹었다. A씨는 “아픔을 터놓고 공유할 수 있는 건 결국 ‘식구’들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참사 후 한 달이 지났다. 사고 현장에서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이태원파출소 58명 경찰관들도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했다. 신고받고 출동해 시민을 보호하고, 주취자들의 싸움을 말리는 등 익숙한 일과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공기까지 가벼워진 건 아니다. 158명이 목숨을 잃은 그 골목을 매일 보고 지나칠 때면 괜히 움츠러든다.
“왜 구하지 못했나” “현장엔 왜 안 갔느냐” 등 지금도 직원들을 질타하는 전화가 하루에 몇 통씩 걸려온다. 그때마다 근무자들은 “100통씩 항의하던 때보다는 낫지 않으냐”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사고 충격과 정신적 외상을 치료할 겨를도 없는데, 계속되는 감찰과 수사는 이들을 더욱 위축시킨다. 한 달째 감찰을 받고 있다는 경찰관 B씨는 “꾸준히 심리 상담을 하고 있지만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치유될 조금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곧 인사 시즌이라 당연히 전보를 희망하는 직원도 많다. 경찰관 C씨는 “떠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기피 근무지로 낙인 찍혀 전입을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누군들 오고 싶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슬픔과 고통이 커질수록 결국 기댈 존재는 동료뿐이다. 경찰관 D씨는 “정신적으로 지칠 때 근무자들과 마음속 얘기를 주고받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고 말했다. 상부에서 휴가 사용을 독려하지만 연차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참사 당일 희생자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한 직원은 “내가 빠지면 다른 동료가 근무를 더 서야 한다는 미안함에 그저 버티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엔 전보 신청 뜻을 접고 이태원파출소를 지키겠다고 선언한 직원도 부쩍 늘었다. 고민 끝에 연장 근무를 결심한 또 다른 직원은 “우리끼리 똘똘 뭉쳐 먼저 무너지지 말자며 격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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