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 장편소설 '박제사의 사랑'
어느 날 아내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박제사인 남편 '박인수'는 어렴풋이 이유를 짐작한다. 이틀 전 새벽 화장실에서 자신이 양성 반응의 임신테스트기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내의 죽음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아이를 낳은 후 더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부부였다. 영문을 물어도 침묵하던 아내는 떠났다. 유골을 아내의 고향 강물에 뿌리며 '박인수'는 생각한다. "채수인……. 당신과 함께했던 날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을 나는 꼭 찾아낼 것이다."
한국문학의 서정성을 대표하는 소설가 이순원(65)의 신작 장편 '박제사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박인수'가 아내 유품을 정리하며 발견한 단서는 단 두 가지. 아내의 휴대전화에 찍힌 수상한 전화번호 두 개와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 입금된 아내의 비밀 통장. 진실의 조각을 획득할수록 감당하기 어렵지만 아내의 존엄과 살아남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추리는 계속된다. 아내의 진실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순간, 가족이 무엇인지를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추리와 박제 작업이 교차로 서사를 끌어간다. 경주마를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모습"으로 박제해가는 과정은, 죽음과 애도를 한 걸음 떨어져 곱씹는 시간이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완벽한 복제나 복원는 없다. 죽음이 그렇다. 하나 죽은 자와 삶을 공유하며 주고받았던 위안과 교감을 기억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작가는 기억의 가치를 '박제'라는 장치를 통해 말한다.
'박제사의 사랑'은 작가가 1992년 발표한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이후 30년 만에 선보이는 추리소설이다. 작가의 바람처럼 멋진 "서정적" 추리소설 한 편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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