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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기업과 용한 무당의 공통점

입력
2022.12.04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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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우
이춘우 서울시립대 교수·(사)기업가정신학회 명예회장

편집자주

보는 시각과 시선에 따라서 사물이나 사람은 천태만상으로 달리 보인다. 비즈니스도 그렇다. 있었던 그대로 볼 수도 있고, 통념과 달리 볼 수도 있다. [봄B스쿨 경영산책]은 비즈니스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는 작은 시도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손님: 안녕하세요~ 요즘 사과가 어떤가요?

사장님: 모레가 어머님 기일이시지요?

손님: 기억력도 좋으셔~

사장님: 오늘은 사과보다 배가 꽤 괜찮아요. 사과는 내일 들어오는 것을 보고 연락드릴게요.

이런 대화 모습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동네 가게에서 흔했던 풍경이다. 이 둘은 서로 믿고 아껴주는 베프(best friend) 같다. 사업이 번창하려면 새 고객을 양적으로 많이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 번 구매한 고객이 다시 찾아오고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단골손님을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국어사전에 '단골'은 특정 가게나 거래점 등을 고정적으로 이용하는 손님, 혹은 그러한 손님이 고정적으로 이용하는 업체를 이르는 우리말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 단골의 어원은 '무당'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단골'은 원래 '세습 무당'을 지칭하는 의미였으나, '단골집, 즉 늘 정하여 놓고 거래를 하는 곳' 혹은 '단골손님'의 의미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풍어제, 기우제 등 민속 굿을 할 때마다 고정적으로 불러 쓰는 무당을 '단골무당' 또는 '당골'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골이 풍요로운 생활을 희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데 도움 주는 역할을 했던 것처럼, 사업도 손님의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단골의 역할과 동질적이어서 이렇게 변화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우리말 단골과 같은 말로 중국어 常客, 일본어 常客(じょうきゃく) 또는 常連(じょうれん), 영어 regular (customer), frequenter, 프랑스어 magasin fréquenté, magasin préféré, client habituel, 독일어 der Stammkunde, 스페인어 tienda favorita, cliente asiduo 등이 있다. 동서양 모두 단골을 지칭하는 표현이 있지만, 손님·사장님 관계의 본질을 담는 용어는 우리말 단골이 제일인 것 같다. 단골은 일반 고객과 달리 더 깊고 특별한 관계로, 단골손님에게 가게 사장님은 외상도 주고 단골손님의 가정사나 개인사와 관련해 도움을 주기도 하는 상호 신뢰하는 사이다.

단골은 경영학의 고객충성도 및 재구매율과 거의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객충성도(customer royalty)는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고객의 태도로 재구매율로 측정 관리할 수 있다. 재구매율이란 이미 한 번 물건을 샀던 고객이 그 물건을 다시 사들이는 비율 또는 이미 물건을 샀던 가게에서 다시 물건을 사는 비율이다.

이러한 단골은 자영업 같은 작은 사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계약'을 통해 거래 관계를 맺는 큰 사업에도 있다. B2C뿐 아니라 B2B에서도 계약 관계가 종료된 후에도 재계약이나 계약을 연장하는 건 단골 관계의 성격을 갖고 있다. B2B에서, Business Value Chain에서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장기간 거래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단골의 개념인 것이다.

이처럼 단골이 내포하고 있는 핵심가치는 상호 '믿음(신뢰)'이다. 기업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과정에서 고객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비즈니스의 본질이다. 고객을 양적인 개념으로 접근하는 시장점유율(market share)과 함께 고객의 질적 개념으로 볼 수 있는 단골 즉, 고객과의 신뢰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에도 민속신앙을 이용한 사람들이 '용한 집'을 찾듯이 고객도 용한 기업을 찾는다. 그 기업이 고객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있어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한 번 찾아온 고객을 기억하고 항상 친절하게 대하며 친구처럼 사귀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눈에 띄는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론 성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단골손님(1972)' 노래 가사 중에 "오실 땐 단골손님, 안 오실 땐 남인데…(중략)… 안 오시면 외로워지는, 그리워라 단골손님…"이라고 표현되듯 업주에게 단골은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특별한 존재이다.

이춘우 서울시립대 교수·(사)기업가정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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