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락 손댄 더탐사에 법조계 "주거침입죄 적용 가능"
공인가족 취재 논란은 조국 전 장관 때부터
언론사 손해배상 유튜브는 제외...선동 매체 못 걸러
2만1,000건, 1만3,000건, 1만8,000건.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등록된 '세 공인' 관한 올해 기사 건수(천자리 미만 버림)입니다. 기사의 주인공은 각각 한동훈 법무부 장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정치권이 한 장관을 자주 언급하는 이유가 있었네요. 빅카인즈는 국내 54개 언론사가 1990년부터 출고한 모든 기사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한 장관 관련 키워드'는 단연 유튜브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더탐사)'였습니다.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하며 이 매체와 "협업했다"고 밝혀 유명세를 탔죠. '그 술자리에 있었다'고 주장한 첼리스트가 경찰조사에서 "거짓말"이라고 밝히며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는가 싶던 더탐사는 주말 한 장관 자택을 찾은 과정을 유튜브에 생중계하며 다시 '몸집'을 키웠습니다. 올해 보도된 더탐사 관련 기사 665건 중 329건이 최근 일주일 사이에 쏟아졌네요.
한데 더탐사의 한 장관 취재 논란을 찬찬히 뜯어보니 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더군요. '취재 뻗치기는 어디까지가 합법인가'란 업계 고민부터, '경찰이 스토커에게 피해자 집주소를 알려주면 배상 요구는 어떻게 할 수 있나' 하는 사회적 문제까지. 하나씩 정리해봤습니다.
"공동현관문 넘는 순간 주거침입"
지난달 27일 오후 1시. 더탐사 관계자들은 한 장관 아파트 단지 정문과 공동현관을 통과하고 자택 문 앞까지 도착하는 과정을 모두 촬영해 유튜브에 공개했습니다. 관계자 5명은 한 장관 자택 현관문 앞에서 여러 차례 초인종을 누르고, 도어락 해제를 시도하고,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기습적으로 압수수색을 당한 기자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한 장관도 공감해 보라"고 방문 취지를 밝힌 게 논란을 더 낳았죠. 한 장관은 더탐사 관계자 5명을 공동주거침입과 보복범죄 혐의로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발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주거침입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평가합니다. △당사자 동의 없이 공동현관에 진입한 점 △경비원에게 정상적인 출입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점 △엘리베이터 키를 소지하지 않은 점을 고려했을 때 주거침입 혐의가 인정될 것이라고 보는 거죠. 최단비 변호사는 지난 1일 YTN라디오 '슬기로운 라디오생활'에서 "더탐사는 다른 분이 (공동현관문을) 들어올 때 같이 왔다고 말하지만 그분들의 허락을 받고 들어온 게 아니다"라며 "그런 곳(복도, 경비실 같은 공용 부분)을 허락 없이 들어온다면 이미 주거지(침입)가 되는 것"이라며 지적했습니다.
다만 보복범죄 혐의는 해석이 갈릴 수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압수수색 심정 공감해보라'며 자택 취재한 데에 고의가 있는지, 단순한 해프닝이었는지는 보다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 장관 입장에서 보복성에 외포심을 느낄 수 있지만, 법원이 보복 범죄의 구성 요건을 인정할 것인가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조국대전 거치며 ‘뻗치기에 주거침입 대응’ 늘어
뻗치기. 취재 대상 인물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집 앞 등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중요 인물인데 연락이 닿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취재 방법 중 하나죠.
한데 왜 이제까지 뻗치기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았을까. 그 수많은 공인들은 왜 참고 살았을까. 예전 사례를 찾아봤습니다.
1994년 서울 상문고 재단 비리사건을 취재하던 한 일간지 기자가 검찰 수사관을 사칭하며 재단 관계자의 안방을 뒤져 관련문서를 몽땅 손에 넣었습니다. 학교 측이 주거침입 및 사문서 절취 등의 혐의로 기자를 고소했고, 언론사는 '공익을 위한 취재'라고 주장했죠. 법원은 죄는 인정하되 공익을 위한 동기의 순수성을 인정, 선고를 유예하는 가벼운 처벌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1998년 이번에는 다른 모 일간지 기자가 서울지검 동부지청의 검찰 수사 기록물을 복사해 빼돌리려다 담당 검사에게 발각돼 구속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죄명이 '절도미수 및 건조물침입 등의 혐의'였죠. 그러나 지나친 조치라는 언론단체들의 잇단 지적과 해당 언론사가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검찰은 9일 만에 구속 취소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법원과 검찰, 여론은 ‘알 권리’라는 대의명분을 높게 산 셈입니다.
더탐사의 행태를 두고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기자가 본래 그런 사람들”이라고 평한 배경이 여기 있을 겁니다. 박 전 원장 자신은 “옛날 대북 송금 특검 때”도, 최근 국정원 수사로 “검찰이 저희 집 압수수색할 때도” 기자들의 현관 앞 ‘뻗치기’를 참았다고 말이죠.
관행처럼 반복된 유명인 집 앞 뻗치기에 본격 제동이 걸린 건 2019년 이른바 '조국 대전'을 거치면서입니다. 조국 전 장관은 딸 조민씨의 오피스텔을 찾아 초인종을 누르며 취재를 시도한 방송사 기자들을 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했죠. 지난해 검찰이 벌금 200만 원의 약식 명령을 법원에 청구했지만, 법원이 정식 재판에 회부해 현재 진행 중입니다. 검찰의 '구약식' 결정이 언론사 봐주기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검찰도 주거침입 혐의 자체는 인정한 셈이죠.
이후 뻗치기에 대한 고소‧고발이 잦아집니다. 2020년 12월 탈북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가 집 앞에 찾아온 방송사 취재진을 폭행해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한데 당시 박 대표는 방송사 취재진을 맞고소했는데, 그 이유가 주거침입 혐의였습니다. 취재진 3명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검찰총장 시절인 2020년 8월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 다섯 차례 무단 침입한 인터넷 언론사 서울의소리 이명수·정병곤 기자를 고소했죠. 법원은 벌금 300만 원을 각각 선고했습니다.
시대도, 세간의 인식도, 취재 환경도 변했습니다. 온라인 매체가 늘면서 '어디까지'를 언론으로 인정해야 하냐 하는 고민도 나옵니다. '진보 가세연' 더탐사, 그 전신인 열린공감TV는 그 논란의 진원지였죠.
지난 대선 때 후보 검증의 본질이라 할 수 없는 '쥴리' 의혹 제기에 앞장서서 여성혐오 비판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유족 동의 없이 공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죠. 한동훈 장관 스토킹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김의겸 대변인과 '협업'해 제기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거짓 제보로 판명났습니다. 하지만 이를 바로잡지 않고 한 장관의 집을 찾아가 "(압수수색당한) 기자들의 마음을 공감해보라"며 이를 중계했죠.
언론중재법은 언론의 고의과실로 재산상 손해, 인격권 침해, 정신적 고통 등으로 손해가 발생된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지난해 민주당이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배를 할 수 있다는 개정안을 내 관련 절차가 국회에서 진행 중에 있고요.
한데 유튜브 매체는 언론중재법상 언론이 아닙니다. 방송통신심의위의 심의-제재 대상도 아닙니다. 지난 9월 언론중재위원회는 언론사 유튜브 채널의 보도 콘텐츠도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냈습니다. 그러나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가로세로연구소', '김용민TV' 등은 뉴스 전문을 표방하는 유튜브 채널은 '판단 유보' 대상이 됐습니다. '이재명' 'TV홍카콜라'처럼 정치인 관련 채널도 포함됐죠. 그나마 법적 강제성도 없습니다.
민주당은 욕설, 혐오, 가짜뉴스 등을 제작‧유포하는 유튜버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윤영찬 대표 발의)을 추진, 국회 논의 중입니다.
장관 집주소도 주는데...일반인은 오죽할까
이번 논란은 경찰이 한 장관 집 주소를 더탐사 관계자에게 알려주면서 다시 논란이 됐습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사건' 이틀 후인 지난달 29일 더탐사 관계자에게 한 장관과 가족의 주거지 100m 이내에 접근하거나 전기통신 수단을 이용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긴급응급조치 통보서를 보냈습니다. 통상 스토킹 가해자에게 전달되는 해당 통보서에는 긴급응급조치 내용과 기간, 항고장 제출 안내만 적혀 있을 뿐 피해자 인적사항은 담기지 않습니다. 피해자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죠. 하지만 이번에 경찰은 통보서와 함께 피해자와 법정대리인에게만 전달해야 하는 긴급응급조치 결정서까지 전달했죠. 여기에는 한 장관의 구체적인 자택 주소도 그대로 기재됐습니다. 더 탐사는 이 결정서를 유튜브 채널에 올리면서 아파트 호수만 가려진 한 장관 자택 주소를 공개했습니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이번 사건으로 국민은 '장관 스토킹 신고도 이렇게 처리했는데 일반인 스토킹 피해자는 얼마나 불안했겠나' 하는 의구심이 들 것"이라며 "경찰의 신뢰가 낮춰진 지점"이라고 지적하더군요.
한 장관처럼 경찰의 미흡한 대처에 피해가 발생했다면 국가에 민사상 손해배상‧위자료를 청구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위자료 범위를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손해배상은 발생한 손해에 상응하는 액수만 배상은 전보배상(塡補賠償)이지만, 위자료는 판사의 직권판단"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 사건에서 정치권이 '불법의 평등'을 조장하고 있다. 예전(조국 전 법무장관 사건)에 당신들이 그랬으니, 우리도 이렇게 해도 된다는 식"이라며 "어떤 매체를 언론으로 봐야 할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알 권리와 취재 방식이 뭔지 등 큰 담론을 가져가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반론보도> ‘“합법적 뻗치기 기준은?” 한동훈 자택 취재가 만든 나비효과’ 관련
본보는 지난 12월 4일자 위와 같은 제목의 기사에서 시민언론 더탐사를 정식 언론사가 아닌 유튜브 매체인 것처럼 보도하고, 시민언론 더탐사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거짓 제보로 판명났다는 등의 취지로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민언론 더탐사 측은 “시민언론 더탐사는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의 적용을 받는 언론사이고,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현재 경찰 수사 중인 사안으로 거짓 제보 여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또한 쥴리 의혹은 유력 대선 후보 배우자의 도덕성 검증 문제로서 지난 대선 최대 이슈 중의 하나였으므로 후보 검증의 본질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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