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초 2년간 무기력한 국회 의석
노태우는 3당 합당, 노무현은 총선 돌파
사정 정국 尹, 어떤 정계개편이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가장 중요한 집권 초반을 무기력하게 허비하고 있다. 6개월간 공격적으로 국정어젠다를 제시하고 끌고 가기는커녕 대통령과 이너서클의 기행만 노출하며 국가적 역량마저 정체된 느낌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고사하고 내년 예산안 통과조차 불확실한 지경이다. 이런 모습은 대선 전부터 예고돼왔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해 정권의 성패가 갈리는 2년간의 ‘골든타임’에 제대로 정책이나 밀고 나갈 수 있을지 우려됐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정계개편이 불가피했다는 얘기다.
원내 상황은 노태우 시절과 가장 비슷하다. ‘1노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난립한 대선 표심이 고스란히 지역분할 총선으로 이어지자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했다. 마침내 1990년 1월 제1야당이던 DJ의 평민당만 배제한 채 ‘3당 합당’이라는 초유의 정계개편이 이뤄졌다. 한국 정당사에 여당과 야당이 합당한 건 처음이었고 그로써 집권여당이 원내 3분의 2를 확보하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
이와 다른 노무현의 길도 있다. 집권 초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인위적 정계개편을 시도하지 않았다. 대통령탄핵안 가결 당시 집권당은 47석의 제3당에 불과했다. 한나라, 민주 양당을 반개혁으로 몰아붙인 전략이 먹히면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획득했다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래 총선을 통해 명실상부한 거대여당이 탄생한 최초의 사례다. 권력이나 공작으로 여대야소를 만드는 무리수 없이 민의가 반응하면서 해결한 경우다.
국민의힘이 올여름 이준석 밀어내기에 몰두할 당시만 해도 ‘윤핵관’이 주도하는 정계개편설이 나돌았다. 요즘은 사정당국의 야당 털기 수사를 고리로 정치권 재편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권 초 야당의원 뒷조사가 진행되고 약점을 고리로 의원 빼가기가 그 흔한 관행이었다. 검찰이 민주당 내 중도성향 노웅래 의원까지 타깃으로 삼은 최근 움직임은 역대 정권의 악습을 떠올리게 한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민주당을 (검찰 수사로) 쑥대밭으로 만든 뒤 정계개편을 도모하니 하는 말들은 몇 달 전부터 흘러나왔다”고 말한 그대로다.
그러나 사정정국과 야권의 위축, 이를 통한 국정주도권 확보 시나리오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모든 부작용을 감내하며 동력으로 작용해야 할 대통령 지지율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전 정권 수사가 YS시절 시대정신을 반영한 군사정권 청산 작업에 비견될 수준이 못 되는데다 현재의 진보·보수 지지층 지형을 봐도 정권에 반대하는 압도적인 절대 비토층이 존재한다. 새 정부에 대한 낮은 기대감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그나마 이재명 수사로 지지율 30%선이 유지된다고 보는 시각이 상당하다.
결국 안팎으로 취약한 정권의 입지를 있는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해답일 것이다. 예산정국이 끝나면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면으로 접어든다. 국정철학을 구현할 ‘윤석열 당’으로 전환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그 방향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수도 있다. 총선을 치를 당대표 리더십이 어떤 성격이어야 하는지를 두고서다.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을 제대로 벌여야 한다는 얘기다.
과거 DJ는 소수파 정권임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몸을 낮췄다. 민주화 세력과 대립해온 5공화국 출신 김중권씨를 막강한 첫 대통령비서실장으로 기용했다. 집권하면 정치보복을 할 것이란 영남지역의 광범위한 선입견을 돌파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무당층으로 떠난 표심을 되돌리려면 그들의 마음부터 사야 한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한 달을 맞아 대국민 메시지도 없었다. 국정조사가 파기될지, 참사의 책임자 처벌 과정에서 대통령의 마음이 국민에게 드러날 것이다. 이 기회부터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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