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관심이 자칫하면 '도박 호기심'으로
이벤트 등 유인 많고 접근 쉬워 무방비 노출
"불법 도박 단속 강화하고 예방 교육 관심을"
'정배' '역배' '플핸' '마핸'
2022 카타르 월드컵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면서, 평소 내기를 좋아하는 A(16)군은 친구들과 생소한 용어들을 섞어가며 대화하기 시작했다. 정배는 승리 확률이 높은 팀에 베팅하는 것을 뜻하고, 역배는 약팀에 베팅한다는 의미다. 플핸은 플러스 핸디캡, 마핸은 마이너스 핸디캡을 의미한다. 모두 '불법토토' '사설토토'로 불리는 온라인 불법 스포츠 도박과 관련된 은어들이다. 불법토토가 중고교 교실까지 깊숙하게 침투한 것이다. A군은 "평소에도 한 반에 4, 5명 정도는 불법토토를 했는데, 월드컵 기간에는 최소 두 배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대목 맞은 불법 토토... "유혹 많아요"
월드컵 시즌을 맞아 온라인 스포츠 도박에 빠져드는 중고생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법 스포츠 도박 사업자들에게 월드컵은 4년마다 찾아오는 '대목'이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경기가 매일 열리는 데다, 예측을 벗어난 이변도 많아서 '대박'을 노리는 구경꾼들이 끊임없이 몰려든다. 온라인 곳곳에 베팅 유도 광고가 넘쳐나는 이유다.
하지만 합법 스포츠 베팅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행하는 스포츠토토가 유일하며, 청소년은 이용이 금지돼 있다. 반면,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는 성인 인증 절차도 없이 휴대폰과 입출금 계좌만 있으면 누구든지 계정을 바로 만들 수 있다. 온라인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월드컵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도박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중학생 B(16)군은 "인터넷에 평소보다 도박 홍보 배너가 훨씬 많아졌다"며 "월드컵은 최고 이벤트라서 '누가 얼마를 땄다'는 소문이 돌면 호기심이 더 생긴다"고 털어놨다. 예상을 깨고 일본이 독일을 2대 1로 이긴 E조 조별리그 경기에서 일본에 5만 원을 걸어 30만 원을 딴 학생 이야기는 또래들에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규 회원이 충전·베팅하면 가입을 유도한 회원에게 보너스를 주는 이벤트도 교실 내 온라인 도박을 확산시키고 있다. 서울의 한 고교생 C(17)군은 "불법토토에 관심을 보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에서 가입부터 베팅 방법까지 자세히 알려준다"고 전했다.
실질적 차단 어려워... "다른 도박 빠질 위험도"
학생들의 베팅 금액은 보통 1만~10만 원이다. 성인에 비해 큰 액수는 아니지만, 호기심이나 재미로 시작했다가 중독으로 이어지거나 다른 도박에까지 손을 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도박 중독 청소년 진료건수는 2017년 837건에서 지난해 2,269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문제는 마땅한 통제 방안은 없다는 점이다. 도박 사이트는 대부분 해외에 인터넷 주소(IP)가 있기 때문에 단속 자체가 어렵다. 수사의뢰 건수에 비해 검거 비율이 28%(올해 8월 기준)에 그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이트를 감시하고 있지만 차단 요청부터 실제 의결 및 조치까지는 1, 2주가 걸려 실효성이 떨어진다. 운영자가 체포되지 않으면 특정 도메인을 차단해도 새 도메인이 만들어지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불법 도박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예방 교육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청소년들은 일상적으로 디지털에 노출돼 있고, 성인 행동에 대한 모방 욕구가 강해 온라인 도박에 빠져드는 것"이라며 "월드컵 기간에 도박 예방 및 경고 문구를 내보내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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