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가 상한선 배럴당 60달러
물가상승 막고 러시아 압박 절충안
러, 음지서 인도·중국·터키 겨냥할 듯
유럽연합(EU)이 해상으로 운송되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선을 배럴당 60달러(약 8만 원)로 통제하기로 합의했다. 이보다 비싼 값에 거래되는 원유는 유통을 제한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자금을 말리겠다는 포석이다.
러시아는 '뒷거래'와 '감산'으로 제재 무력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겨울을 앞두고 원유 공급을 끊겠다며 벌써부터 으름장을 놓고 있다.
G7·호주도 유가상한제 동참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는 5일부터 해상으로 운송되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을 배럴당 60달러로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 선물 거래 가격(88달러)의 70% 수준이다. 유가 변동에 따라 상한액을 두 달마다 한 번 재검토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이에 따라 EU 회원국은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할 때 상한액 이하 가격만 매겨야 한다. 더 비싸게 거래되는 러시아 원유는 해상 보험과 해상 운송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된다.
EU 회원국과 주요 7개국(G7), 호주가 조치에 참여한다. EU와 영국이 세계 보험 시장 대부분을 점유한 점을 감안하면 바다를 통해 합법적으로 원유를 거래하는 모든 국가와 기업이 이번 조치의 영향권에 들게 된다. 러시아가 정상 거래를 통해 시장 가격을 받으며 원유 수출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다.
EU 상한액 두고 갑론을박
이번 조치의 목적은 러시아가 높은 유가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제한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줄곧 거론돼 왔지만, EU 회원국들의 이견으로 합의가 지연됐다.
러시아와 인접한 발트해 인근 국가는 “상한액을 20~30달러 선까지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그리스와 키프로스 등 해상 무역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상한선을 더 높여야 한다고 반발했다.
“상한선이 너무 낮으면 러시아 원유 공급 자체가 끊길 수 있다”는 의견과 “상한선이 너무 높으면 제재 효과가 떨어진다”는 견해가 평행선을 달린 끝에 60달러 선에 합의가 이뤄졌다. △원유 가격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은 막으면서도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절충안인 셈이다.
러시아 ‘그림자 선단’으로 우회
효력은 현재로선 확실하지 않다. 러시아 원유 생산 원가가 워낙 낮아 60달러 제한의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의 석유 생산 비용이 배럴당 20달러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제재를 빠져나갈 구멍까지 마련해 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는 준비돼 있다”고 자신했다. 국제 사회 감시망을 피해 원유를 거래하는 별도 운송 체계, 이른바 '그림자 선단'이 러시아의 '믿는 구석'인 것으로 보인다. 그림자 선단에 속하는 유조선들은 해상 보험업계와 계약하지 않은 대신 원유 금수조치 대상국인 이란, 베네수엘라 등과 음지에서 거래한다.
최근 몇 달 사이 국제 시장에서 노후 유조선 거래가 급증했는데, 대부분 러시아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는 이미 100척 규모의 그림자 선단을 꾸렸다”며 “인도, 중국, 터키 등에 원유를 계속 공급하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러시아가 유가 상한제 도입 국가에 석유 공급을 끊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국제 유가가 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가 아닌 EU 회원국들이 더 고통 받는 ‘제재의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유가 변동에 주목하고 있다. 주요 산유국으로 구성된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는 4일 정례회의에서 기존 원유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당초 이들이 대규모 감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서방의 유가상한제 시행으로 러시아가 원유 감산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면서 ‘동결’로 선회한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