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우주기관에서 배운다]
①나사, 독립성ㆍ전문성만 생각한다
편집자주
정부가 얼마 전 우주항공청 설립 계획을 공식 발표함에 따라, 한국도 몇 년 안에 우주 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을 가지게 됩니다. 우주 개발 후발국가인 한국에게 우주 전담기관은 그야말로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새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이미 우리보다 우주 개발을 일찍 시작한 미국·일본·유럽·인도 등 우주 전담기관을 살펴보고,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것을 피해야 '한국형 나사'를 성공하는 조직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 봅니다.
"60년대가 끝나기 전, 미국은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안전하게 지구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매우 큰 비용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에 직면해 목표를 낮출거면, 아예 가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1961년 5월 25일 케네디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은 미국 우주개발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그는 여기서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유인 달 착륙 프로젝트인 '아폴로 계획'을 공식화하고 의회에 적극적 지원을 요청했다.
우주계획 직접 설득 나선 케네디
소련에 뒤진 우주개발 기술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겠다는 비전 선언이었지만, 이날 연설 내용을 뜯어보면 예산안 시정연설에 가까웠다. 케네디 대통령은 △월면차 로켓 개발에 2,300만 달러 △우주 위성 사업에 5,000만 달러 △기상관측위성 개발 가속화에 7,500만 달러 등 세부 예산 항목과 액수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때로는 간곡하게, 때로는 확신에 찬 어조로, 예산 증액을 요청한 케네디 대통령에게 의회는 '나사 예산 89% 대폭 증액'으로 화답했다.
케네디 연설 이후 미국 연방정부와 의회는 나사에 그야말로 돈을 들이붓기 시작했다. 나사 예산이 연방정부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 0.5%였지만, 연설 다음해인 1962년 1.2%로 급증했고, 케네디 대통령 사망(1963년) 이후에도 증액 기조가 이어져 아폴로 계획 실행 직전인 1966년 4.4%로 최고점을 찍었다. 대통령과 의회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은 나사는 결국 1969년 인류를 달에 보내는 데 성공하며, 케네디가 8년 전 꾼 꿈(60년대 안에 달 착륙)을 현실에서 구현했다. 리더십과 투자의 힘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셈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아폴로 계획을 위해 직접 의회를 설득하고 여론을 환기시킨 사례에서 보듯, 미국의 우주 패권은 '나사→국가우주위원회(위원장 부통령)→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우주 거버넌스 체계 덕분에 가능했다. 나사는 백악관이 직접 예산안에 관여하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고, 대통령은 주요 우주 계획 입안 때마다 의회를 직접 설득하거나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안보 위기 속에서 탄생한 나사
나사가 이렇게 신속하고 효율적인 조직이 된 것은 미국의 생존 위기로부터 탄생한 기구였기 때문이다. 2차 대전 패전국 독일의 미사일 기술을 흡수한 소련은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렸다. 당시 인공위성은 우주에서 적국을 감시할 수 있어 원자폭탄에 이은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 여겨졌다.
뒤늦은 미국은 처음엔 조바심을 냈다. 한 달 뒤 뱅가드 위성 발사를 시도했지만 발사대조차 벗어나지 못한 채 로켓이 폭발했다. 이 모습은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됐고, 미국인들의 불안감은 하늘을 찔렀다. 미국 하늘 위로 소련의 인공위성이 떠다녀도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백악관 직속 우주기관(나사) 창설을 제안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백악관 내에 국가우주위원회를 설치하고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통상 신생 기관은 정부 내 역학관계에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하기 마련이지만, 대통령이 우주 정책 최고 책임자를 자임하면서 나사의 위상은 자연스럽게 강해졌다. 다른 부처나 군의 입김에서도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
민간·군 우주 조직 대거 흡수
조직적으로도 군사 관련 우주활동을 제외한 모든 민간 역량이 나사의 지붕 아래 모였다. 버지니아주 랭글리 항공연구소, 캘리포니아주 에임스 항공연구소, 오하이오주 루이스 비행추진연구소가 나사 산하로 들어왔다.
무기 체계와 무관한 군(軍)의 우주개발 기능도 대거 나사로 이동했다. 뱅가드 계획에 참여했던 해군연구소 인력은 새로 건립된 고더드 우주비행센터로 이동해 나사의 핵심인력이 됐고, 육군의 관리를 받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제트추진연구소(JPL)의 최첨단 기능과 인력도 나사로 옮겨갔다. V2로켓을 개발한 독일 망명 과학자 베르너 폰브라운의 로켓팀도 육군 탄도미사일국에서 나사 마셜 우주비행센터로 이동했다. 미 공군이 추진했던 유인 우주비행 임무는 나사의 첫 미션 머큐리(1958~1963년 미국의 최초 유인 우주비행 계획)가 이어갔다.
발사체 사업 등을 대거 민간에 넘긴 지금도 나사는 2020년 기준 1만 7,000여명을 직접 고용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 연간 233억 달러의 예산을 운용하고 있다. 닉슨 행정부 때 폐지됐던 국가우주위원회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7년 6월 부활했고, 지금은 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무부, 국방부 등 부처 장관들과 나사 국장이 참여한다.
나사는 연준과 같은 위상의 독립 조직
행정조직 측면에서 나사의 가장 큰 특징은 독립성이다. 영어 단어 administration를 대체할 단어가 없어 항공우주'국'으로 직역되는 것일 뿐, 실제 미국 행정체계 상으로는 중앙정보부(CIA), 연방준비이사회(FRB)와 같은 연방 독립행정기관에 해당한다.
나사 국장은 대통령이 지명한 후 청문회에서 상원의 동의를 얻어 최종 임명되는데, 실적 부진 또는 비윤리적 사유가 뚜렷한 경우에만 해임할 수 있다. 이 덕분에 우주 분야 정책 추진에 있어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고 다른 부처로부터도 독립적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우주정책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지낸 존 록스돈은 저서 'NASA탄생과 우주탐사의 비밀'에서 "우주기관이 더 큰 부처 안에 있는 대신 독립 기관으로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나사가 다양한 목표와 관심사에 충분히 기여하는 배경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한국이 우주와 관련한 연구개발에 투자해 충분한 이익을 얻고 우주 활동 분야에서 주요 참여국이 되고자한다면 무엇보다 독립된 우주 관련 정부조직을 창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가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
구성원 대부분이 과학기술 전문가라는 점도 특징이다. 나사는 일선 연구소는 물론 지휘부까지 과학자나 엔지니어들로 구성돼 있다. 실무 경험이 쌓인 연구자가 직접 정부나 의회에 보고하고, 세계 무대에서 국제협력을 이끄는 구조는 소련 등과의 우주경쟁에서 미국이 앞서나가는 원동력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과학자 중심 조직은 나사가 수십년 간 기술과 역량을 쌓는 데도 도움이 됐다. 예산 확보나 권한 확대가 최고의 관심사인 다른 부처와 달리, 엔지니어와 과학자로 구성된 나사의 제 1목표는 항상 더 많은, 더 어려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이었다. 대부분 설계·개발이 외주 아닌 나사 안에서 해결되다보니 고급 인력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유지하고 있는 전문 분야 커뮤니티는 다른 산업체, 연구계와 경쟁하고 협력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군대가 '안보'라는 배타적 잣대로만 바라보던 우주를, 평화로운 국제 협력의 공간으로 만드는 데도 나사의 이런 노력이 일조했다. 나사 설립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폐쇄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소련과 달리, 미국의 우주개발은 개방적·평화적·과학적이여야 한다"고 믿었다. 과학자 중심의 나사는 우주정거장 건설 등 주요 사업에서 러시아(당시 소련)와 국제 협력을 이어가며 인류의 공동 목표를 앞당기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형 나사, 기대반 우려반
이런 나사를 롤모델 삼아 한국은 우주항공청 설립을 시작으로 우주산업에 본격 나서려 한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외청(부처 산하에 설치되나, 부처 본부 밖에서 별도 계통을 가지고 사무를 처리하는 기관)으로 내년 말까지 우주항공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우주청 역시 나사처럼 전문가 조직을 표방한다. 일단 정부는 특별법을 통해 청장의 자율권을 확보해준다는 계획이다.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직도 대통령이 직접 맡아 우주정책을 이끌기로 했다. 나사 설립 초기 대통령이 직접 국가우주위원장을 맡았던 것과 비슷하다.
일단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가 우주청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우주위원회가 국무회의 급으로 격상되면서, 우주청장이 주요 사안을 대통령에 직접 보고하고 위원회 안건을 제안하는 등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우주전담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해 온 황진영 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주청 설립을 환영하면서 "우주청이 과기정통부에 속하고 그 수장이 차관급이라는 점은 다소 아쉽지만, 우주청장이 대통령에 직보하고 대통령이 국가우주위원회를 통해 각 부 장관들을 설득시키는 구조가 된다면 국가 우주개발 전담조직으로서의 역할 수행에는 문제가 없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다른 부처와의 관계 등 밑그림을 그리는 지금 단계에서, 국가우주위원회에 상설 사무국을 설치해 운영하는 것을 검토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우주청이 항우연이나 천문연구원 등 기존 우주 연구기관과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할 것인가는 숙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언론에 "우주청과 항우연은 별도 조직이고 협업 체제로 출범이 예상된다"고 답했다. 나사와 같은 '화끈한 통합'을 염두에 두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성과 발사체 제작을 담당하는 항우연, 우주과학 연구를 이끌어 온 천문연은 과기정통부 과학기술연구회 산하 25개 연구소 가운데 하나다. 우주청이 설립되면, 기존 연구기관의 입장에선 주무청(과기정통부의 외청)과의 거리가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
부처별 위상과 권한의 차이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한국 행정조직의 특성상, 외부에서 올 가능성이 높은 우주청장(차관급)이 다른 부처 장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조직법상 청은 정부입법(정부가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하는 것)을 직접 할 수 없어 많은 권한을 과기정통부에 의존해야 하고, 기존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우주 분야에 대한 주도권을 쉽게 놓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주무청만 따로 생겼을 뿐 우주가 여러 과학정책 중 한 분야에 불과한 위상으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다.
문홍규 천문연 우주탐사그룹장은 "대통령이 우주위원장이 되어도 외청의 한계는 넘기 어려울 것“이라며 "우주는 10여 개 부처와 관련성을 가지는데 우주청장이 자기보다 높은 장관들과 대등하게 협의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 그룹장은 "이를 해결하려면 최소한 부(部) 급 기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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