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는 중남미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는가. 빈곤, 마약, 폭력, 열정, 체게바라? 인구 6억2,500만. 다양한 언어와 인종과 문화가 33개 이상의 나라에서 각자 모습으로 공존하는 중남미의 진짜 모습을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가 전해준다.
K팝, 팬심에서 학문적 관심으로
K팝 팬덤과 한국 관심과는 별개
정치 아닌 문화 공간이자 이상향
칠레 발파라이소에 사는 마리아(25세, 가명)는 13살 때 친구와 함께 K팝 행사에 가본 후 K팝에 푹 빠졌다. 슈퍼주니어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좋아한다. 두 아이돌 그룹의 음반 컬렉션을 전부 구입했다. 2012년 칠레에서 열린 뮤직뱅크 녹화를 비롯한 크고 작은 K팝 콘서트를 보러 다녔다. 소피아(24세, 가명)는 2020년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K팝을 듣기 시작했다. BTS를 좋아한다. 어머니는 한국 드라마 팬이다. K팝에 대한 관심은 언어와 음식으로까지 이어졌다.
마리아와 소피아는 사회사업을 전공했다. 졸업 논문 주제로 발파라이소 지역 K팝 팬들의 문화 혼종화 과정을 택했다. 칠레, 그리고 중남미 팬들 사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한류 현상을 지켜보면서 K팝에 대한 논문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팬심이 학문적 관심으로 연결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문화는 지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어떤 형태로든 삶의 방식과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전공과 연계해 더 깊이 연구해보고 싶어졌다. 지난 11월에는 칠레에서 세 번째로 열린 뮤직뱅크 콘서트를 보기 위해 수도인 산티아고에 갔다. 초여름에 드문 폭우와 우박으로 공연은 중간에 취소되었지만, 이미 공연이 시작된 이후라 환불이 안 된다고 했다. 끝까지 공연을 보지 못해 아쉽긴 해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 주최 측이 입장권을 초과 판매해서 사람이 너무 많아 공연장에서 숨도 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K팝과 드라마를 통해 보는 한국과 실제 한국을 비교해보고 싶어 한국에 왔다. 그런데 2009년부터 한국에 산다는 칠레 친구는 K팝이 인기를 끌기 이전에 왔다는 점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한다. 2014년에 한국에 왔다는 다른 칠레 친구는 자기는 오로지 공부를 위해 한국에 왔지, K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멕시코 친구는 드라마는 좋아해도 K팝은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K팝을 좋아하면 공부에 관심 없는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에 선을 긋는 듯하다. 몇몇 또래 한국 대학생들도 자기들은 K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은 K팝을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 이상하다. K팝을 좋아한다고 하니 한국 음식과 화장품까지, 한국과 관련한 모든 것을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 한국에 대한 관심과 K팝 팬덤이 왜 같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많은 사람이 중남미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주최하는 K팝커버댄스페스티벌을 통해 K팝과 한국을 연결 짓는다. K팝이 굳이 한국의 음악이 아니어도 음악 자체가 좋은데 말이다. 그런데 부산 엑스포 홍보를 위해 무료 공연을 펼친 BTS가 왜 군대에 가는지 모르겠다. BTS가 국가 기동대인 줄 알았는데, 한국 남자들은 반드시 군대에 가야 한다니 이해는 된다. 비록 화면으로만 봤지만, 공연 중에 비친, 솔직한 마음속 얘기를 할 수 없는 BTS의 좌절감이 이해가 된다. 하기야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강타한 싸이도 군대에 두 번이나 갔다고 들었다. 한국 정서를 잘 모르니 한류의 성공은 온전히 정부의 노력 덕인 것 같은데 한국에 와보니 다들 아니라고 펄쩍 뛴다.
한국 사람들이 보리치 대통령도 K팝 팬들 덕분에 당선되었냐고들 한다. 그러나 K팝 팬들의 정치 참여는 구태의연한 정치를 탈피하자는 표현의 수단일 뿐이었다.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팬들의 조직력을 이용할 생각으로만 접근했다.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이들에게 한류는 제3의 문화 공간이다. BTS의 RM을 라몬(Ramón)으로, 진을 후안(Juan)이라 부르며 제3의 공간을 즐기고 이상향을 꿈꾼다. K팝은 정치가 아닌, 문화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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