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중한 정세 속 상무정신 필요한 우리
자유와 풍요 터전 가꾸는 새해 바라며
되새기는 김종서 장군의 호기가(豪氣歌)
올해 초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다. 그런데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이른바 강대국들의 행태를 보니 이 세계는 정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제연합(UN)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세계 평화를 지키겠다고 나선 나라들이다. 그런데 평화 수호 의무를 진 안보리 상임이사국, 러시아가 침략자로 돌변한 것이다.
미국과 나토(NATO)는 어떤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만, 러시아 내 군사시설을 원점 타격하는 것에 반대하고, '비행금지구역(No-fly Zone)'도 수용하지 않는다. 핵을 가진 러시아와 3차 세계대전을 피한다는 명분이다. 중국은 눈감은 채 평화적 해결을 주문한다. 이런 판이니 미사일과 폭격에 대한 공포는 오로지 우크라이나 국민의 몫이다. 졸지에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를 보니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경구가 절로 떠오른다.
일주일 전, 프랑스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은 '나토가 러시아 문 앞까지 진출했다'는 두려움을 줄곧 주장해 왔다"며 러시아와 타협할 접점을 찾자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결국 우크라이나가 물러서라는 말이다. 당연히 피해자들의 격렬한 비난을 불렀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상임이사국끼리 침략, 규탄, 중재, 방조 등의 역할극을 하는 것 같아서 그 비정함에 한기가 느껴진다.
동북아 상황도 폭풍전야다. 중국이 대만 문제에 관련해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북한도 핵을 들고 연신 무언가를 외쳐대는 상황이다. 경제도 힘든 판에, 전쟁 걱정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옛말이 괜히 있겠는가.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은 2017년 '예정된 전쟁(원제, Destined for War)'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을 말했는데,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는 아테네에 위협을 느낀 기존 패권국 스파르타가 전쟁을 일으켰다고 분석한 것에 착안한 개념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 역시 '함정'에 빠져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며 한반도를 그 무대로 봤다. 참고로 학계는 패권국이 신흥국을 공격한다고 보는 설과 신흥국이 패권국을 공격한다는 설로 갈리는데, 후자의 사례로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있다.
유사시 우리로서는 한미 동맹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동맹' 자체가 본래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임의적 결속인 만큼,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더구나 동맹국은 전쟁 당사국의 의지대로만 협력하지 않는다. 국제 정치의 속성상 동맹국의 협력은 종종 한참 뒤에 제공되거나 또는 무너진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 강화된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의 모습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 측의 지원 태도가 좋은 방증이다. 명나라 군대는 어르고 달래야 공격에 나섰고, 조선군의 반격을 방해했으며 삼남(三南) 지방을 일본에 넘겨주는 내용을 협상하기도 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그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결국 전쟁 억지력은 스스로 갖출 수밖에 없음을 역사는 웅변한다.
전쟁사의 대가인 마이클 하워드(Sir Michael Eliot Howard, 1922~2019)는 이런 말을 했다. "전쟁은 악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력의 사용을 포기한 자는 그렇지 않은 자의 손에 자신의 운명이 맡겨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War may be evil but those who renounce its use find themselves at the mercy of those who do not.)."
제 잇속에 혈안인 정치꾼과 작별하고 잃어버린 상무(尙武) 정신을 회복하여 자유와 풍요의 터전을 가꾸고 지키는 새해가 되길 바라며 '만리변성(萬里邊城)에 일장검(一長劍) 짚고 서서'라는 김종서 장군의 호기가(豪氣歌)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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