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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신화 모로코의 ‘복수혈전’… 아프리카 식민 설움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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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신화 모로코의 ‘복수혈전’… 아프리카 식민 설움 날렸다

입력
2022.12.12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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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아프리카 첫 4강 신화에 대륙이 들썩
식민지배국 스페인 격침, 프랑스와 준결승전
이민자 가정 출신 선수들 뭉쳐 '원팀' 맹활약
모로코·프랑스 축구팬 충돌 우려에 긴장 고조

모로코가 10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하자 모로코 수도 라바트 도심에 모인 시민들이 기뻐하며 축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라바트=AFP 연합뉴스

모로코가 10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하자 모로코 수도 라바트 도심에 모인 시민들이 기뻐하며 축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라바트=AFP 연합뉴스

북아프리카 모로코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과거 유럽 식민지배국들을 상대로 펼친 ‘복수혈전’에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열광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열린 8강전에서 우승 후보 포르투갈을 꺾고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4강에 진출하면서 ‘신화’는 절정에 다다랐다. 모로코는 식민지배국 스페인을 16강에서 침몰시킨 데 이어 준결승전에서 또 다른 식민지배국 프랑스와 맞붙는다. 강대국에 수탈당한 약소국의 설움, 타국에서 핍박받은 디아스포라의 눈물을 씻어주는 마지막 ‘한풀이’ 승부가 펼쳐지기를 아프리카인 모두가 염원하고 있다.

“모로코의 승리는 아프리카의 승리”

10일 카타르 도하 알 투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한 모로코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모로코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도하=AP 뉴시스

10일 카타르 도하 알 투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한 모로코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모로코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도하=AP 뉴시스

아프리카는 지금 축제 분위기다. 8강전 종료 휘슬이 울리고 모로코가 1대 0 승리를 확정짓자 모로코는 물론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이 탄성을 질렀다.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선 시민들이 폭죽을 쏘며 춤을 췄고,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리며 흥을 돋웠다. 이집트 카이로에서도, 튀니지 튀니스에서도, 리비아 트리폴리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연출됐다.

모로코는 조별리그에서 세계 랭킹 2위 벨기에를 격파 하며 파란을 일으켰고, 토너먼트 진출 후에는 ‘무적 함대’ 스페인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마저 무찔렀다. 모로코는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인구 99%가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이지만, 이제는 아프리카의 희망이자 자존심으로 불린다. 아프리카는 모로코를 응원하면서 종교와 민족을 초월해 하나로 똘똘 뭉쳤다. 아프리카 축구팬들은 “모로코도 아프리카 국가이고, 모로코 축구도 아프리카 축구의 일부”라고 말한다.

모하메드 압둘라히 모하메드 전 소말리아 대통령은 8강전이 끝난 뒤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당신들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만들었다”며 “이번 승리는 아프리카가 부상하고 있으며 무시될 수 없는 힘이라는 증거”라고 감격스러워했다. ‘아프리카 축구 레전드’ 사무엘 에투 카메룬축구협회장도 “대륙 전체가 당신들을 응원하고 있다”며 모로코를 치켜세웠고, 가나 공영방송 GTV는 경기 생중계를 하던 해설위원들이 얼싸안고 환호성을 지르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우리 아프리카 형제들에게 축하를 보낸다”고 썼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모로코의 성공은 자부심을 불러일으켰고 매우 쉽지 않은 단결을 이뤄냈다”고 평했다.

식민지 역사·이주민 설움 ‘한풀이’

10일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모로코가 포르투갈을 꺾고 승리하자 독일 뒤셀도르프 시내에 모인 모로코 축구팬들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뒤셀도르프=AP 연합뉴스

10일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모로코가 포르투갈을 꺾고 승리하자 독일 뒤셀도르프 시내에 모인 모로코 축구팬들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뒤셀도르프=AP 연합뉴스

모코로와 아프리카가 모로코의 승리에 열광하는 건 ‘언더도그(약자)의 반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인에게 한일전이 단순한 라이벌전이 아니듯, 모로코인에게도 유럽 국가들과의 경기는 비극적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모로코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이 한창이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1912년 이후로는 스페인과 프랑스가 협약을 맺고 모로코를 분할 통치했다. 두 강대국은 모로코의 자원을 빼앗고 모로코 독립운동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56년 프랑스령 모로코가 먼저 독립하고 곧이어 스페인도 모로코 점령지를 돌려줬지만, 모로코 북부 도시 세우타와 멜리야는 스페인 영토로 남은 탓에 양국은 지금도 영토 반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ㆍ정치적으로 불편한 관계인 스페인을 월드컵 무대에서 꺾었다는 사실에 모로코인들은 국가적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라바트 주재 한 대사관에서 정치 고문을 맡고 있는 루브타 탈렙은 “모든 모로코인은 어떠한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게 됐다”며 “우리는 식민지 상처로부터 모로코를 치유해준 축구대표팀을 영원히 고마워할 것”이라고 미국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식민지 시절 스페인과 프랑스로 넘어간 모로코 이민자들과 그 후손들이 겪은 설움도 모로코인들의 투지를 북돋는 요인이다. 스페인에는 모코로 이민자 80만 명이 있고, 프랑스에도 약 75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모로코 이민자들은 여전히 사회 하층부에서 차별과 냉대를 받고 있다.

스페인과의 16강전 승부차기에서 모로코의 승리를 결정지은 마지막 키커 아슈라프 하키미도 스페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청소부, 아버지는 노점상을 하며 그를 키웠다. 현재 모로코 축구대표팀 선수 26명 중 14명이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선수 부모들은 자녀가 모로코 대표팀을 선택한 결정을 자랑스러워한다”며 모로코 선수들의 가족애와 애국심을 탄탄한 팀워크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모로코는 15일 프랑스를 상대로 또 다른 복수를 꿈꾸고 있다. 왈리드 라크라키 모로코 감독은 “꿈을 꾸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며 “우리도 월드컵 우승을 꿈꿀 수 있다. 우리와 맞붙은 팀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이미 프랑스 파리 시내에는 숨막히는 긴장이 감돌고 있다. 프랑스가 이기든, 모로코가 이기든, 양국 축구팬들이 충돌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모코로와 프랑스가 나란히 준결승에 진출한 날에도 일부 축구팬들이 상점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려 프랑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진압하기도 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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