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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소련에 치이던 유럽 우주개발... 협력으로 위기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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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소련에 치이던 유럽 우주개발... 협력으로 위기 돌파

입력
2022.12.13 04:30
수정
2023.01.0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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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우주기관에서 배운다]
③ESA, 미소 경쟁 속 연합의 길을 택하다

편집자주

정부가 얼마 전 우주항공청 설립 계획을 공식 발표함에 따라, 한국도 몇 년 안에 우주 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을 가지게 됩니다. 우주 개발 후발국가인 한국에게 우주 전담기관은 그야말로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새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이미 우리보다 우주 개발을 일찍 시작한 미국·일본·유럽·인도 등 우주 전담기관을 살펴보고,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것을 피해야 '한국형 나사'를 성공하는 조직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 봅니다.


2021년 12월 25일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우주기지에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실은 아리안5호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미국이 개발했지만, 이를 우주까지 싣고 가는 발사체는 유럽우주국(ESA)이 담당했다. 기아나=AP 연합뉴스

2021년 12월 25일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우주기지에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실은 아리안5호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미국이 개발했지만, 이를 우주까지 싣고 가는 발사체는 유럽우주국(ESA)이 담당했다. 기아나=AP 연합뉴스


"이대로라면 우리는 미국과 소련의 웅장한 노력을 바라보는 한낱 구경꾼이 될 뿐입니다. 힘을 합쳐야 합니다.

(1959년 5월 이탈리아 물리학자 에도아르도 아말디가 유럽 각국 과학 협회에 보낸 서한 중)

2차 세계대전 이후 세상은 미국 진영과 소련 진영으로 양분됐고, 전쟁 전까지 세상을 이끌던 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국제 질서에서 주도적으로 설 자리는 거의 없었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극심한 인재 유출 현상을 겪어야 했다. 저명한 과학자들은 대부분 미국 아니면 소련 행을 택했고, 미소 양국은 체제 경쟁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과학기술에 투자했다. 중성미자(뉴트리노)라는 말을 만든 것으로 잘 알려진 아말디의 '단결' 호소는 냉전기 유럽 과학계가 맞이하던 이러한 위기의식을 잘 반영한 일화다.

미소에 치이던 유럽, 공동연구의 길을 찾다

2차 세계대전 당시 V-2로켓을 개발한 독일의 망명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가 1962년 나사의 마셜우주센터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나사 제공

2차 세계대전 당시 V-2로켓을 개발한 독일의 망명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가 1962년 나사의 마셜우주센터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나사 제공

특히 소련이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성공시키고 이듬해인 1958년 미국이 거대 우주기관인 항공우주국(NASA·나사)을 만들면서, 우주 분야 기술 인력 유출은 더 심화될 조짐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공동의 우주기관'이라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창립 멤버들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오랜 교류와 협력의 전통을 이어오던 유럽 과학자들이 국가 단위에선 감당하기에 너무 값비싼 입자가속기 실험실을 구축하기 위해 1954년 9월 설립한 연구소가 바로 CERN이다.

CERN 초대 소장을 지낸 아말디가 보기에, 우주 분야는 물리학과 처지가 비슷했다. 현대물리학 연구를 위해 값비싼 실험실이 필요하듯, 우주 연구를 위해서도 발사체 개발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했다. 국가별로 개발비는 대기엔 빠듯하지만, 각국이 돈과 인력을 합치면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연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섰다. 유럽의 우주 과학자들도 더 이상 유럽을 떠날 필요가 없게 된다.


이탈리아 물리학자 에도아르도 아말디. ESA 제공

이탈리아 물리학자 에도아르도 아말디. ESA 제공


아말디는 CERN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을 중심으로 초기 논의를 주도했다. 유럽 최고의 연구소에서 맺어진 인적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했다. 초기 구상을 함께 한 프랑스 물리학자 피리어 빅터 오제는 프랑스국가우주위원회 의장이었고, 영국우주연구국립위원회(BNCSR) 의장 해리 매시와도 인연이 있었다. 때마침 CERN은 1960년이 되기도 전에 입자가속기 고에너지 방출에 성공하며, '연합 연구소'의 효용성을 입증해 내기도 했다.

"우주과학계의 CERN을 만들자"는 제안은 1960년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우주연구위원회(COSPAR)에서 공식 논의됐고, 준비위원회를 거쳐 1962년 유럽발사체연구기구(ELDO)와 1964년 유럽우주연구기구(ESRO) 설립으로 이어진다. 두 기구는 1975년 유럽우주국(ESA)으로 재탄생한다.

모든 사업을 국제협력으로 추진


세계 각국의 우주개발 예산 규모. 유럽은 붉은 색으로 표시돼 있다. 유로컨설트 제공

세계 각국의 우주개발 예산 규모. 유럽은 붉은 색으로 표시돼 있다. 유로컨설트 제공


이런 역사에서 볼 수 있듯 ESA는 태생 자체부터가 국제 협력의 결과로 가능했다. 1975년 10개국으로 시작한 ESA는 2022년 기준 회원국이 20개국으로 늘었고, 지난해 기준 51억 9,700만 달러의 예산을 민간(비군사) 분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2위 중국(102억 달러)의 우주 예산의 많은 부분 군사 분야로 사용된다는 것으로 점을 감안하면, 순수 우주과학에 대한 연구는 중국에 뒤질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가 연합하면서 우주 연구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했던 셈이다.

ESA가 추진하는 모든 사업은 국제 협력이다. 특히 높은 성공률과 낮은 가격을 내세워 '성공적인 상업 로켓'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유럽 우주발사체 아리안(Ariane)은 국제 협력의 정수다. 대부분 로켓 발사체가 미국 러시아 일본 등 특정 한 국가의 기술로만 만들어진 것과 달리, 아리안-5는 유럽 13개국에서 56개 기업(아리안-5 기준)이 공동 개발했다. 1979년 '아리안-1' 발사 직후에는 세계 최초의 상업 우주 운송서비스 회사 '아리안 스페이스'를 다국적 출자 방식으로 출범시켜, 상업 우주 시장의 문을 열기도 했다.


아리안 6호 개발에 참여한 유럽 기업들

아리안 6호 개발에 참여한 유럽 기업들

ESA의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지만 핵심 연구시설은 연구 성격에 맞게 유럽 각지역에 분산돼 있다. 발사 시설은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에, 유럽우주연구기술센터(ESTEC)는 네덜란드에, 유럽우주작전센터(ESOC)는 독일에 있다.

예산은 회원 20개국의 출자금으로 마련된다. 모든 회원국은 경제 규모에 따라 의무 출자금을 내야하며, 특정 국가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국가의 출자금이 전체의 25%를 넘지 못한다. 해마다 바뀌는 ESA 출자 비중은 프랑스, 독일이 최대인 25%를 차지하고 이탈리아와 영국이 10% 안팎이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ESA는 유럽 외 국가들과도 긴밀한 국제 협력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근 나사가 진행 중인 아르테미스 계획(유인 달 착륙)에서도 ESA는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ESA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콜롬버스 모듈과 무인화물선 ATV를 개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아르테미스 우주선 '오리온'에 부착돼 산소, 공기, 추력 등을 공급하는 '유럽서비스모듈' △달 우주정거장 게이트웨이의 거주 모듈과 통신 모듈을 담당하기로 했다. 그 반대급부로 ESA는 △오리온을 통해 유럽 우주인 세 명 이상이 게이트웨이에 머무르고 △우주인 달 착륙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냈다.

"장기계획 만들고, 연구원 협업 장려해야"


아르테미스 1호에는 나사와 함께 ESA 로고가 새겨져 있다. ESA가 아르테미스 1호에 '유러피안 서비스 모듈'을 제공했다. 나사 제공

아르테미스 1호에는 나사와 함께 ESA 로고가 새겨져 있다. ESA가 아르테미스 1호에 '유러피안 서비스 모듈'을 제공했다. 나사 제공

역내(유럽)에서 단결하고 역외에서는 적극적으로 협력한 ESA의 경험은 우주 전담기구 창설을 추진 중인 한국에도 시사하는 부분이 많다. 아직 우주 기술의 후발주자인 한국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국제 협력을 통해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

유럽 과학자들의 협동 노력으로 탄생한 ESA는 연구자 단위의 국제협업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ESA 연구원은 유엔과 같은 국제 공무원 신분이지만, 국가별로 집중하고 싶은 사업에는 자국 연구원이 파견되다 보니 교류가 상시로 이뤄진다.

특히 우주 탐사 분야는 우주개발에서도 가장 시간과 돈이 많이 들면서도 다른 분야에 비해 눈에 보이는 이익은 미미하다. 그래서 탐사에서 국제 협력은 필수다. 가장 예산이 많은 나사조차, 한국의 달 탐사선 다누리의 힘을 빌려 달의 극지방 촬영을 할 정도다.

우주개발 전문가들은 효과적인 국제협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장기적이고 확고한 우주개발 계획'이라고 조언한다. 세부 프로젝트마다 예산 따기에 급급한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 명확하고 현실성 있는 국가 차원의 장기계획이 있어야 국제 협력에도 힘이 붙는다는 것이다. 우주법 전문가 정영진 국방대 교수는 "유럽은 국제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점들(예컨대 기후변화)을 반영해 유럽 차원에서 우주계획을 설정하고, 이에 따라 각 국가나 기업들이 세부적인 우주개발(관측 위성)을 추진한다"며 "국제 협력 활성화를 위해서는 특정 기술이나 분야에 매몰되지 말고 국제 흐름을 반영하는 차원 높은 우주계획 설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과학자·연구원 차원에서의 협업도 권장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나사 다트 프로젝트의 소행성 충돌 장면을 한국천문연구원의 우주물체 전자광학 감시네트워크(OWL-Net)와 외계행성 탐색시스템(KMTNet)으로 촬영한 국제협업이 좋은 예이다. 이 협업은 학회를 통해 교류하던 연구원과의 서신을 통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남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유럽은 거대 우주탐사 사업 뿐아니라 '호라이즌 유럽'과 같은 풀뿌리 연구 플랫폼도 운영, 소규모 그룹차원의 협업이 국가간 공동프로젝트로 확대될 수 있도록 열어두고 있다"며 "새로 시작되는 한국의 우주전담 기관에서도 연구원 차원의 국제 협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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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나사, 독립성ㆍ전문성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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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JAXA, 우주전략실 신설로 날개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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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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