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울진 평해·기성·근남면 바다 여행
대관령 넘어 강원도와 경상북도 동해안 일대의 8개 명승지를 관동팔경(關東八景)이라 일컫는다. 북한 땅에 통천 총석정과 고성 삼일포가 있고, 남한 땅에 고성 청간정,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과 월송정이 차례로 이어진다. 울진에 2개나 있는 까닭은 그만큼 해안선이 길기 때문이다. 동해는 서해에 비해 해안선이 단조롭지만, 바다 빛깔은 시리도록 맑고 푸르다. 울진의 해안선은 남북으로 120㎞에 달한다. 직선에 가까운 7번 국도를 내리 달려도 60㎞가 넘는다. 바다 보기 좋은 전망대와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은 한적한 해변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쪽 월송정에서부터 북쪽으로 울진 바다를 따라간다.
월송정이 '달 뜨는 정자'가 아니면?
평해읍 월송리 해안의 송림을 지나면 얕은 모래 언덕 위에 2층 누각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월송정이다. 정자에 오르면 양쪽으로 드리운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얀 해변과 푸른 바다가 운치 있게 모습을 드러낸다.
2층 누각에는 안축(1287~1348), 김종서(1383~1453)의 글과 함께 이행의 시가 걸려 있다. 고려의 사관으로 재직할 때 이성계를 글로 무고했다는 죄를 물어, 조선 개국 후인 태조 2년(1393)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울진으로 귀양간 인물이다.
그는 백암거사(白巖居士), 일가도인(一可道人)으로도 불렸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호는 기우자(騎牛子)다. ‘소를 탄 사람’이라는 뜻이니, 귀양 생활 중에서도 월송정의 풍광을 가장 멋들어지게 즐긴 인물이다. 이행은 월송정의 풍광에 대해 ‘푸른 바다와 하얀 달이 소나무에 반쯤 걸렸다(滄溟白月半浮松)’고 노래했다. 그의 벗인 권근도 이행을 가리켜 ‘평해에 살면서, 매양 달밤이면 술을 가지고 소를 타고 산수에서 놀았다’고 평했다.
이쯤 되면 월송정이 ‘달 뜨는 정자’일 거라 여기기 쉬운데, 한자 뜻으로만 보면 ‘솔숲 너머 정자(越松亭)’라는 의미다. 조선 중기 문신으로 선조 25년 평해에서 3년간 유배생활을 한 이산해의 ‘월송정기(越松亭記)’의 기록을 따랐다. 월송정의 명칭에 대해 ‘신선이 솔숲을 날아서 넘는다(飛仙越松)는 뜻에서 취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월송정은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처음 지었다고 하는데, 오랜 역사 치고는 건물이 지나치게 깔끔하다. 지금의 월송정은 1980년에 새로 지었다. 건물 주변 송림도 당시 조성했으니 숲의 나이도 40년 안팎이다.
운치로는 월송정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평해 황씨 사당의 송림이 더욱 볼만하다. 아름드리 적송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숲으로 목재로서의 가치도 뛰어나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돼 있다. 황씨 가문에서는 2,000년 역사를 지닌 숲이라 자랑한다.
월송정 바로 아래에 평해사구습지가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동해안에 형성된 유일한 사구로 강에서 실어온 흙과 바다에서 밀려온 모래가 좁고 긴 백사장을 형성하고 있다. 백암온천 부근 백암산에서 흘러온 남대천 강물이 사구를 사이에 두고 바다와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다. 매일 아침 먼바다 수평선에서 해가 솟아오르면, 잔잔한 남대천 수면에 빛기둥이 부서진다. 모래톱을 사이에 두고 바다와 하천의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월송정은 원래 지금보다 육지 쪽으로 약 400m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월송포진성이 있던 곳으로, 당시에는 그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명종 때는 월송정이 이 진성의 북문 성루를 겸하기도 했다. 보통 정자는 단층 건물인데, 월송정을 2층으로 복원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2011년 도로공사를 하면서 성의 흔적이 드러났고, 발굴 조사 결과 높이 3.1~4.7m, 둘레 328m가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안타깝게도 성터에는 사찰이 들어서서 복원작업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커다란 느티나무 2그루와 잘생긴 아름드리 적송 한 그루만이 옛 성의 흔적을 증언하고 있다.
월송포진성에는 수군 400명이 주둔하며 동해안을 경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삼척포영과 함께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는 수토(수색과 토벌) 임무를 맡은 부대였다.
월송정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구산마을에 ‘대풍헌(待風軒)’이라는 건물이 있다. 조선시대 구산포에서 울릉도로 가던 수토사들이 순풍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건물이다.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기 위한 수토제도는 1694년부터 1894년 갑오병장 바로 직전까지 200년 동안 운영됐다. 독립된 행정관청이 들어서기 전 울릉도는 평해군에서 관할했고, 삼척과 평해에서 번갈아 수토사를 파견했다. 수토사는 수군들 중에 차출한 일종의 특수 군인으로 실질적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는 기능을 담당한 조직이었다.
대풍헌 뒤 언덕 위로 조붓한 산책로가 조성돼 있고, 전망대도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알록달록한 구산마을 지붕과 햇살이 부서지는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구산마을에서 다시 조금만 올라가면 바닷가에 도해공원이 있다. 고려 말 평해군수를 지낸 김제의 충정을 기리는 조그만 공원이다. 김제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통곡하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며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동해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공원 뒤편 해안도로 바위 언덕에 그의 칠언시를 새긴 시비가 걸려 있다. ‘오백 년 왕조의 초개 같은 신하’의 결심이 담긴 시다.
도해공원에는 바다로 향하는 김제 조각이 세워져 있다. 그 앞에는 조그마한 마을 해변과 파도가 넘실대는 갯바위가 어우러져 있다. 바위 사이로 들어찬 바닷물이 수정처럼 맑고 투명하다. 계절이 한겨울로 치닫고 있지만, 옅은 에메랄드 물 빛깔이 풍덩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바다 보기 좋은 망양정과 달 뜨는 왕피천
기성면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다 왕피천을 따라 해안으로 나가면 오뚝한 바닷가 산봉우리에 망양정(望洋亭)이 있다. 이름 그대로 바다 보기 좋은 정자다. 망양정도 월송정처럼 처음 세워진 곳과 지금의 위치가 다르다.
고려 때에는 기성면 망양리 해변 언덕에 세워져 있었으나, 조선 세종 때 오래되고 낡았다 하여 인근 현종산 기슭으로 옮겼다 한다. 1860년에는 울진현령 이희호가 현 위치인 근남면 산포리로 이건했다. 평해에는 이미 월송정이 있으니 울진 주민들에게도 번듯한 전망대 하나 선사하고 싶은 현령의 뜻이 반영됐다.
숙종은 관동팔경 중에서도 망양정의 경치가 가장 빼어나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하사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대신 정자에는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송강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의 한 대목이 걸려 있다.
“하늘 끝을 끝내 보지 못하고 망양정에 오르니,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가. 가뜩이나 성난 고래를 누가 놀라게 하였기에, 불거니 뿜거니 하면서 어지럽게 구는 것인가. 마치 은산을 꺾어 내어 온 세상에 흘러내리는 듯, 오월의 아득한 하늘에 백설은 무슨 일인가?”
정자 아래로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는 장면과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 떼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더 이상 고래는 볼 수 없지만, 망양정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그 옛날과 다르지 않다.
왕피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가느다랗게 이어진 모래사장이 양쪽으로 몸집을 키워 드넓은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모래톱으로 갈라진 강과 바다가 시린 쪽빛이다. 밀려드는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것과 대조적으로 잔잔한 왕피천에서는 물새가 한가롭게 쉬고 있다. 망양정 주변에는 울진대종과 전망탑이 세워졌고, 이를 연결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산책로에 작품으로 설치한 풍경(風磬)이 파도소리처럼 청아하다.
해안에서 망양정까지는 걸어가도 되지만, 왕피천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한결 수월하고 멋진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그만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성인 왕복 1만 원, 이동 거리에 비하면 좀 비싼 감이 있다.
케이블카 출발 지점에 왕피천 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공중에서 보던 풍광을 눈높이로 마주한다. 잔잔한 왕피천 수면과 가느다란 모래톱 너머로 동해 바다 수평선이 아른거린다. 평해사구습지처럼 색다른 일출을 보기 좋은 곳이다.
지난 8일 해질 무렵 하천가로 내려섰다. 뜻하지 않게 바다에서 동짓달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르고, 모래톱 앞 왕피천 수면에 길게 달빛 기둥이 비춰졌다. 강과 바다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몽환적 풍광이 연출됐다.
왕피천 바로 위쪽에도 바다와 만나는 하천이 있다. 평해와 이름이 같은 남대천이다. 하구에 산책로를 겸한 은어다리가 놓였는데, 해가 지면 은어 비늘보다 화려한 조명이 반짝거린다. 남대천 수면에 일렁거리는 모습 또한 운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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