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여대, '사전 승인' 이유 대자보 철거
인권위 "사전 승인은 표현의 자유 침해"
‘학생이 간행물을 배포하거나 게시하려면 학생처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18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최근 서울 성동구 한양여대 건물 곳곳에 이런 내용이 담긴 공문이 붙었다. 원래는 학생들이 쓴 대자보가 있던 자리다. 지난달 14일부터 사흘간 한양여대 일부 학생은 학교 시설 다섯 곳에 총장과 총학생회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게시했다. 그때마다 학교는 ‘불법 부착물’ 딱지를 붙여 떼어냈다. 학교 측은 대자보 철거 뒤 ‘(재발 시) 규정에 따라 무단 정학까지 징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학생들은 학교의 행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 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이유다. 대학 당국은 학생준칙(제2장 8조)을 대자보 철거의 근거로 삼았다. ‘교내에서 학생이 광고, 정기ㆍ부정기 간행물을 배포하거나 게시할 땐 학생복지처에 제출해 총장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다. 한양여대 관계자는 본보 통화에서 “관련 학칙에 따라 처리한 일”이라며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대자보가 간행물에 해당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자보는 학생들이 학교를 상대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소통 수단으로 일반 간행물ㆍ광고물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해당 학칙의 적용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 승인 절차가 학생들의 의사 표현을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자보를 게시한 A씨는 “교육부에 ‘갑질’ 신고가 들어가 사과문을 올린 교수가 여전히 폭언을 일삼고, 총학생회도 침묵해 대자보를 쓴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미온적으로 대처한 학교가 대자보 게시를 승인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함께 대자보를 붙인 B씨도 “학교를 공개 비판했다가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인권위는 현재 조사 개시 여부를 검토 중이다. 다만 인권위는 앞서 여러 차례 “대학 대자보 사전 승인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했다. 지난달 학교 운영 정상화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철거한 명지대 사건에서도 “대자보 사전 허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검열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보냈다. 명지대 총장에게도 교내 홍보 게시물 관리지침과 학사행정규정 등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2020년부터 3년간 인권위에 대학 대자보 문제와 관련해 접수된 진정은 총 10건이다. 이 가운데 조사가 진행 중인 6건을 제외한 4건 모두 인용 처리됐다.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한양여대 관계자는 “인권위의 시정 권고가 나오면 반영해 학칙 개정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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