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보거나 듣지 않아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브라보(Bravo)”를 외치고 싶은 영화나 음악을 만나는 건 특별하다. 일관성, 혹은 독창성이 부분 부분을 넘어 전체적인 흐름에 녹아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작품을 명작 혹은 대작이라고 한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최종 결승전을 앞두고 있지만, 이미 대작을 완성한 이가 있다. 스스로 명작이 됐다고 표현해야 더 맞을까. 아르헨티나 10번 유니폼을 입고 뛰는 리오넬 메시다. 메시는 팀을 도우면서도 개인이 얼마나 돋보일 수 있는지 증명했다.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충격패를 당한 아쉬운 출발을 뒤로한 채 멕시코, 폴란드, 호주, 네덜란드, 크로아티아를 연달아 꺾고 결승에 선착했다. 메시가 중심에 있었다. 5골(공동 1위)을 터뜨렸고 도움도 3개다. 메시는 1966년 이후로 월드컵 네 경기(2006년 세르비아전, 2022년 멕시코ㆍ네덜란드ㆍ크로아티아전)에서 골과 도움을 동시에 기록한 사상 첫 번째 선수가 됐다. 아울러 월드컵에서 메시보다 많은 공격포인트(11골 8도움)를 기록한 이도 없다. 그가 결승전에서 공격포인트를 하나라도 기록하면 미로슬라프 클로제(16골 3도움, 독일), 호나우두(15골 4도움, 브라질), 게르트 뮐러(14골 5도움, 독일)를 넘어 단독 1위가 된다.
게으른 베짱이처럼 뛰면서 포인트만 쏙쏙 빼먹은 것도 아니다. 메시는 이번 월드컵에서 음바페에 이어 슈팅으로 마무리된 공격 상황에 두 번째로 많이 연관(39회)된 선수다. 그만큼 경기 영향력이 크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메시를 보는 일은 즐겁다. ‘입이 벌어진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물론, 전성기처럼 빠른 주력과 화려한 드리블로 상대 혼을 빼놓진 않는다. 다만 팀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슈퍼스타가 된다. 적절한 시점에 드리블로 흐름을 가져오고, 답답할 때는 직접 골을 터뜨린다. 미심쩍은 분은 크로아티아와의 4강전 한 장면을 보시라. 아르헨티나가 2-0으로 앞서던 후반 24분, 메시는 이번 대회 ‘가장 단단한 젊은 수비수’ 요슈코 그바르디올을 기술과 속도 변화로 완벽하게 녹이고 박스 안에 있는 훌리안 알바레스에게 정확한 패스를 넣어 세 번째 골을 이끌어냈다. 만 35세 거장 앞에서 약관의 수비수는 힘을 쓰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동료들이 메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이해하기 더 어렵다. 조금 과장하면 동료라기보다는 선지자와 추종자 같다. 경기장 안팎에서 메시를 공격하는 팀이나 개인은 철저하게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보복을 받는다. 메시를 지키려는 동료들의 의지는 다른 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다. 메시는 이들을 골과 도움 그리고 리더십으로 ‘구원’한다.
발롱도르를 7회나 수상했지만 ‘월드컵 우승컵이 없다’는 이유로 그간 역대 최고 선수(the Greatest Of All Time) 논쟁에서 아쉬운 처지에 처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 우승컵이 누구에게 돌아가더라도 메시를 깎아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메시가 결승전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이가 이미 일어나 박수 치며 찬사를 보내지 않겠나.
'히든K'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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