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을 기회로 미국 의존 탈피 중동
'네옴' 등 과감 투자로 그린에너지도 주도
국제 질서 판도 바꿀 '다중동맹' 이끌까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진출팀이 확정됐던 지난 7일(현지시간) 이웃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월드컵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는 장면이 연출됐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모습이 지난여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때 무함마드 왕세자의 냉담한 태도와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기자가 “바이든 대통령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동맹국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불쾌함을 숨기려는 외교적 수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다극화하는 국제사회 현실을 수용하려는 노력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는 최근 ‘다극화 시대의 중동’이란 글을 통해 “미 정부는 국제질서를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이분법으로 바라보며 동맹국의 충성도를 시험하는 잣대로 이용하려 했지만, 점점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쪽 편을 택하기보다는 양쪽 모두와 관계를 유지하며, 사안별로 협력해 국익을 최대화하고 있다”며 “미국은 이런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과거 미소 냉전시대 양 진영을 벗어난 국가들은 ‘비동맹’(nonaligned)이라는 소극적 전략을 택했다면, 지금은 점점 많은 나라들이 ‘다중동맹’(omni-aligned)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 나라가 다중동맹 전략을 선택하려면 강대국이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지정학적 요인을 갖춰야 한다.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에 다중동맹 전략을 실현할 기회를 선사했다.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던 유럽을 비롯, 전 세계의 중동 의존도가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향후 5년간 걸프만 6개국이 벌어들일 석유 가스 판매수익이 3조5,000억 달러(약 4,500조 원)에 달한다.
중동이 가진 에너지는 조만간 고갈될 화석연료에 그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역시 아라비아 사막의 햇빛보다 더 경쟁력 있는 입지를 찾기 힘들다. 아랍에미리트(UAE)에 내년 2월 완공될 알 다프라 태양광발전소의 발전 단가는 1㎾h(시간당킬로와트)당 1.35센트(약 18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태양광(이하 전력통계정보시스템 11월 정산단가)은 250원이다. 가장 저렴한 원자력도 50원가량이다. UAE는 이렇게 값싼 전력으로 그린 수소를 만들어 전 세계에 공급하려 한다. 유럽연합(EU)의 ‘탄소 국경세’가 본격 시행되면 그린 수소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중동 석유와 가스가 지난 100년간 전 세계 경제 발전의 동력이었다면, 향후 100년은 중동의 태양광이 그 역할을 맡게 될지 모른다.
UAE 재생에너지에 가장 강력한 맞수는 사우디의 ‘네옴 프로젝트’다. 흔히 사막에 무모하게 유리 장벽 도시를 지으려는 전제 군주의 5,000억 달러짜리 백일몽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무함마드의 야심은 치밀하다. 네옴 프로젝트에는 도시 배후에 2030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에너지 단지 ‘옥사곤’이 포함돼 있다. 이곳 태양광발전소는 1㎾h당 1센트로 전기를 생산해, 수소를 만들어 2050년 7,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 세계 수소 시장을 장악하려 한다. 최근 독일 슈피겔은 중동의 발전상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네옴이 가동하면 UAE는 다시 사막이 될 것”이라는 프로젝트 최고 책임자의 호언장담을 인용했다.
역대 어느 대회보다 약팀이 강팀을 꺾는 이변이 많았던 카타르 월드컵이 19일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열강과 나머지 나라의 상하 관계로 유지되던 세계질서가 수평적으로 바뀌는 엄청난 변화가 이제 중동에서 막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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