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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영화 '마션' 제작비보다 싼 값에 화성탐사선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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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영화 '마션' 제작비보다 싼 값에 화성탐사선 쐈다

입력
2022.12.23 11:30
수정
2023.01.02 15:4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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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우주기관에서 배운다: ④인도 ISRO]
소달구지로 우주선 나르면서 자체기술 길러
극단적 효율성 추구, 저비용으로 개발 성공


편집자주

정부가 얼마 전 우주항공청 설립 계획을 공식 발표함에 따라, 한국도 몇 년 안에 우주 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을 가지게 됩니다. 우주 개발 후발국가인 한국에게 우주 전담기관은 그야말로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새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이미 우리보다 우주 개발을 일찍 시작한 미국·일본·유럽·인도 등 우주 전담기관을 살펴보고,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것을 피해야 '한국형 나사'를 성공하는 조직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 봅니다.


"우주를 향한 OO의 야망은 돈 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 이 나라는 여전히 어린이 5분의 2가 영양실조이며, 인구 절반이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다. 우주 개발 대신 썩은 위생시설이나 고치는 게 어떤가."

(영국 이코노미스트 2013년 11월 4일자 칼럼)

다른 나라 언론으로부터 '쓸데 없는 짓 말고 위생이나 신경 쓰라'는 핀잔을 듣던 나라. 가난한 살림에도 우주를 향한 꿈을 버리지 않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려고 허리띠를 졸라맸던 이 나라. 어디일까?

가난하다고 꿈마저 버리겠는가?

ISRO 과학자들이 1981년 인도의 첫 통신위성 'APPLE'를 소 달구지로 옮기고 있다. ISRO 제공

ISRO 과학자들이 1981년 인도의 첫 통신위성 'APPLE'를 소 달구지로 옮기고 있다. ISRO 제공

바로 인도다.

이코노미스트의 편견에서 보듯, 우주개발은 강대국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우주는 너무 높고 성공은 너무 멀기에. 한 해에 수십조원을 쏟아붓는 강대국들의 경쟁에 잘못 발을 들였다간 본전도 못 찾겠지 싶은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인도는 이런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한 나라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달러도 안 되던 1960년대부터 우주 개발에 적극적이었다. 매우 가난했지만 동네 작은 교회를 빌려 위성을 조립했고, 완성된 위성은 소 달구지로 운반했다. 선진 우주기술을 배우고 국산화시키는 데 과학인재들을 활용했다.


로켓 상단부를 자전거로 옮기고 있는 ISRO 연구원들. ISRO 제공

로켓 상단부를 자전거로 옮기고 있는 ISRO 연구원들. ISRO 제공

이런 끈질김은 인도를 우주 선진국으로 이끌었다. 우주경제 시대가 도래하는 지금, 이미 인도는 지구 저궤도(LEO·고도 2,000km)와 정지궤도(GEO·고도 3만6,000 km)에 온갖 위성을 올릴 수 있는 발사시스템(PSLV, GSLV-3 등)을 갖췄다. 인도우주연구기구(ISRO)에 따르면 인도가 지금까지 쏘아준 외국 위성은 33개국 381기에 달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을 비웃던 이코노미스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저 칼럼이 나온 직후 인도는 화성탐사선 '망갈리안'을 발사했고, 망갈리안은 발사 10개월여 만인 2014년 9월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이제 어느 나라도 우주를 향한 인도의 노력을 쉽게 평가 절하하지 못한다. 1년 전 비난에 가까운 논평을 실었던 이코노미스트조차 "적은 돈으로 신흥 강대국의 이미지를 형성했다"며 톤을 낮췄다. 이 계획에 들어간 비용(7,400만 달러)은 화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션'(2015년)의 제작비(1억800만 달러)보다 훨씬 적다.

ISRO의 화성탐사선 망갈리안 궤도. ISRO 제공

ISRO의 화성탐사선 망갈리안 궤도. ISRO 제공


인도의 화성탐사 망갈리안 프로젝트

예산이 부족했던 인도는 강력한 추력의 화성용 발사체를 개발하는 대신 ①일반 위성을 띄울 때 사용했던 발사체(PSLV)로 지구 궤도에 우주선을 올린 뒤 ②우주선 자체 엔진을 6차례 기동해 점차 고도를 높이고 ③지구 중력으로 원심력이 극대화되는 순간 화성으로 비행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 같은 방법 때문에 우주선 '망갈리안'은 2013년 11월 5일 인도 동부 다완 우주센터에서 타원형 궤도(HEO·247x2만3,556km)로 오른 뒤, 26일 만에 지구 궤도를 떠났다. 망갈리안의 총 무게 1,350kg 가운데 메탄센서 등 과학장비의 무게는 15kg에 불과했고, 절반 이상이 연료로 채워졌다. 다만 사업비는 같은 기간 미국이 진행한 화성 탐사선 메이븐(6억7,100만달러)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최적의 과학로켓 발사장 구축

인도 남부 툼바 지역의 위치. 구글 제공

인도 남부 툼바 지역의 위치. 구글 제공


자기장 지도. 자기 적도가 인도 남부 툼바 지역을 관통한다.

자기장 지도. 자기 적도가 인도 남부 툼바 지역을 관통한다.


인도 우주 개발 역사를 꿰뚫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지정학(geopolitics)이다. 적도 인근에 위치한 남아시아의 패권국, 반중·친러의 성향을 지닌 인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1960년대부터 여러 우주 선진국들을 불러모았다. 우주개발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인도는 이런 주변 환경에 발빠르게 대응하며 경험을 축적했다.

당시는 소련(1957년)과 미국(1958년)이 나란히 인공위성 발사를 성공한 직후였다. 국제사회는 이런 신기술을 이용해 이온층, 태양 활동, 지구 자기장 등을 공동으로 조사하고자 했다. 인도 남부에 위치한 툼바(Thumba)는 국제 협력의 유력한 장소로 거론됐다. 북위 8도인 툼바는 자기 적도(지구 자기장과 수평선의 각도가 0이 되는 지점)와 매우 가까워 과학로켓 발사에 유리했다. 인도는 1962년 우주위원회(ISRO의 전신)을 세워 외국 로켓의 발사를 지원했고, 자국인의 참여를 극대화해 선진국의 경험을 흡수했다.


1963년 인도 툼바 지역에서 진행된 미국의 나이키 아파치 로켓 발사 장면. ISRO 제공

1963년 인도 툼바 지역에서 진행된 미국의 나이키 아파치 로켓 발사 장면. ISRO 제공

이후에는 아예 그 일대를 유엔에 내줬고, 툼바는 과학로켓 발사의 국제적 중심지가 됐다. 1963년 미국의 나이키 아파치 로켓을 시작으로 12년 동안 영국, 프랑스, 소련 등의 과학로켓 350기가 툼바 발사장에서 발사됐다. 미국은 성공적인 로켓 발사를 위해 인도 과학자들을 버지니아주 왈럽으로 초청해 교육하기도 했다.

선진국들에게 안방을 내주며 협력한 경험은 인도 정부가 일찍부터 우주개발에 눈뜨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1969년 ISRO를 설립하고 1972년 세계 최초의 우주전담 부처인 '우주부'를 만들며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지원했다. 미국의 초청 교육을 받았던 과학자 중 한 명인 압둘 칼람(인도 11대 대통령)은 후에 연구팀을 이끌며 미국 스카우트(Scout) 발사체를 토대로 인도 최초 발사체 SLV-3를 개발했다. 1980년 이 로켓이 발사에 성공하며 인도는 세계 6번째 위성 발사국이 된다.


'반중친러' 인도에 문을 두드린 미국

전문가들은 인도가 우주선진국이 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로 러시아(구 소련)와의 긴밀한 관계를 꼽는다.

인도 최초의 우주인 라케시 샤르마(가운데). 라케시 샤르마 페이스북

인도 최초의 우주인 라케시 샤르마(가운데). 라케시 샤르마 페이스북

1962년 중인전쟁 이후, 파키스탄, 티베트 등 남아시아 문제에서 중국과 긴장 관계를 이어온 인도는 소련과 친교 관계를 유지했다. 러시아가 제공한 발사체와 발사시설을 역설계(기존 기계를 분해하는 식으로 기술을 익혀 제품을 만드는 것) 방식으로 연구해, 자력 발사체 기술을 획득했다. 1984년에는 소련 우주선을 타고 비행한 인도 최초의 우주인(라케시 샤르마)이 탄생했다.


인도 무기수입국

인도 무기수입국

인도의 반중 노선은 2000년대 중국의 도약을 견제하려던 미국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우주·군사 기술을 팔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탐나는 시장이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무기 수입국이지만, 70~8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다.

미국과 인도는 2004년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를 맺으며 군사·우주 분야 협력을 시작했다. 2009년에는 '미국 수출통제 부품을 포함한 공공 위성 발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기술보호협정을 체결하면서 국제무기거래규정(ITAR)라는 이름의 우주개발 규제를 완화해 준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6년 3월 2일 인도를 방문해 만모한 싱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6년 3월 2일 인도를 방문해 만모한 싱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ITAR은 미사일 등 발사체 기술이 신흥국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미 정부의 규정이다. ITAR 등 규제 때문에 미국의 기술·부품을 활용한 위성은 미 정부의 별도 허가 없이는 자국 발사체로 발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국이 누리호로 위성을 쏴 올릴 때에도 그 위성에 자이로(위성 자세 제어를 위한 부품) 등이 들어갔다면 미국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인도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출범 회원국(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외의 국가로는 유일하게 ITAR 예외를 허락받은 나라다.

이같은 규제 완화는 1994년 이미 1톤급 위성을 태양동기극궤도에 올리는 발사체 PSLV개발에 성공한 인도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인도는 2010년 7월 미국 수출통제 부품을 탑제한 알제리의 위성을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외국 위성 발사 시장에도 본격 뛰어들었다. 2015년 9월에는 미국 국적의 위성을 발사했고, 최근에는 GSLV로 영국 원웹사의 인공위성 36개(총 5,400kg)을 한번에 발사하는 등 적극적인 발사 서비스 판매에 나서고 있다.

ISRO원장의 절대적 리더십

달 탐사선 찬드리안 2호를 실은 최신형 발사체 GSLV-3가 2019년 7월 22일 인도 다완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ISRO 제공

달 탐사선 찬드리안 2호를 실은 최신형 발사체 GSLV-3가 2019년 7월 22일 인도 다완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ISRO 제공


인도는 한정된 예산으로 우주강국을 노리는 한국이 본받을 만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10억 달러(2015년 이전까지)에 못미치는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화성탐사까지 성공시켰다. '적은 비용'에 집착하는 인도는 조직체계 역시 극단적일 정도로 효율성을 추구한다.

ISRO 원장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비슷한 1만7,000명의 연구인력(공무원 신분)을 이끈다. 정책 조정 및 행정 기능이 각각 우주위원회와 우주부에 분산돼 있지만, ISRO 원장 1명이 우주위원회 위원장, 우주부 장관, 앤트릭스(ISRO 산하기업) 대표까지 겸임한다. 행정과 연구개발(R&D)을 두 조직이 나눠 맡는 점은 나사와 다르지만, 같은 수장이 총괄하도록 해 효율성을 강화했다.

미국 프랑스 독일은 물론 인도까지 행정과 연구개발 조직을 사실상 한 지붕 아래 둔다는 점은 새로운 우주 거버넌스 구축을 준비 중인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주개발은 전문 분야이면서도 다른 부처, 해외 우주기관과 끊임 없이 소통해야 해 행정과 연구개발을 되도록 한 곳에 담는 게 유리하다. 한국의 경우, 신설될 우주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 기존 연구개발 기관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고민이 아직 미흡하다.

황진영 항우연 책임연구원은 "강하냐 느슨하냐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우주선진국들은 우주청에서 연구개발 기능을 함께 관장한다"며 "지금과 같이 정부부처인 과기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연구개발 조직이 이원화돼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 공무원 제도의 특성상 우주청과 연구기관을 합치는 게 어렵다면, 직속 기관으로 두거나 겸임 청창을 임명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도 우주조직의 '속도'도 배워야

인도 우주조직의 상업화(commercialization) 기능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우주경제에 일찍 눈뜬 인도는 1992년부터 상업화 부분을 전담하는 ISRO 산하 기업 앤트릭스를 설립해 운영한다.

ISRO 파견 인력 100여명으로 구성된 앤트릭스는 인도 발사체를 활용한 우주발사 서비스, 인도 위성이 수집한 데이터를 이용한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국내외 우주업체가 원활하게 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국내 우주 스타트업 1세대로 꼽히는 이성희 컨텍 대표는 ISRO에 사업 문의 메일을 보내자 "핑퐁치듯이 바로" 앤트릭스 업무 담당자와 연결됐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새로 만들어질 우주청에도 별도의 상업화 파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발에 집중하는 조직은 '계약이 곧 실적'인 조직에 비해 상업화에 소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세계의 여러 우주조직과 사업 관련 연락을 주고 받는 것이 일상이다. 최근에는 인도 우주기업 디간타라와 함께 '우주쓰레기-위성 충돌 경고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이 대표는 "우주산업은 이미 속도전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빠른 반응이 없으면 기업들은 관심이 없다고 판단하고 다른 기관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럽, 러시아 등 우주 선진국들은 패스트트랙을 위해 별도의 상업화 조직을 두고 있다"며 "우리도 사업화 지원기관을 별도로 만들거나, 우주청 부청장에게 상업 쪽을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진 우주기관에서 배운다' 몰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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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나사, 독립성ㆍ전문성만 생각한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18000004535?did=NA

②JAXA, 우주전략실 신설로 날개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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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ESA, 미소 경쟁 속 연합의 길을 택하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117330003292?did=NA

④ISRO, 산하기업 세우고 각국과 협력하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916060004927

⑤캐나다, 로봇팔 등 세부 기술에 올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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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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