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영화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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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가 '권력'이 됐다"며 전세계적 성폭력 고발 운동의 의미를 어떻게든 왜곡하고 폄하하려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성착취를 구조적으로 용인하는 사회에서 얼마나 절박한 과정 끝에 피해 여성들이 세상에 나서 권력자의 성 비위를 고발하는지를 영화 '그녀가 말했다'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발단은 2017년 10월. 미 일간 뉴욕타임스에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의혹이 보도됩니다. '시네마 천국' 등 아카데미 수상작과 '반지의 제왕' 등 흥행작을 배급·제작하며 할리우드의 권력자로 군림한 와인스타인이 영화 미팅을 핑계로 젊은 배우나 직원을 호텔로 불러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폭로였습니다. 이후 그가 어떻게 됐는지는 역사에 기록된 바 그대로입니다. 귀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도 성추행 폭로에 가세했고, 보도 이후 82건의 고소가 이어졌죠. 그는 2020년 2월, 23년형을 받고 현재 복역 중입니다.
미투 이전만 해도 권력자의 성추문 보도는 '삼류 태블로이드지 가십'으로 전락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조디 캔터(조 카잔)와 메건 투히(캐리 멀리건)라는 두 뉴욕타임스 기자는 이 사안을 철저히 '유해한 일터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로 접근하여 탐사보도의 영역에서 신중하게 보도합니다. 이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는 전 세계적 미투 운동을 촉발하는 '방아쇠'가 되고 이들은 퓰리처상을 거머쥡니다.
영화는 1990년대 와인스타인의 행적을 더듬어 실체를 규명하고, 피해자를 만나 피해 사실을 기사화하기 위한 기자들의 설득 장면으로 채워집니다. 기사의 신뢰도를 높이고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 위한 저널리스트의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지요. 그러나 사건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대부분의 피해 여성은 주저합니다. 성추행 합의시 '기밀 유지 조항'이 담긴 서류에 서명한 데다가, 언론 보도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두 기자는 시간에 쫓겨 약간은 엉성한 만듦새로 보도를 내보내야만 하는 상황. 이때 피해 여성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동의합니다. 제 말을 기사화하는 것 말이에요." 이대로 사안이 묻혀서는 안 된다는, 그리하여 자신의 딸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피해자가 용기를 낸 것입니다. 그리하여 힘 있는 남성이 여성들을 성착취하고, 할리우드라는 산업계가 교묘하게 묵인, 방조한 범죄 서사는 이렇게 폭로되고 단죄받는 것으로 종결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서사가 12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힘 있게 이끌어 나가지만, 영화 전체에서 ①가해자인 와인스타인의 모습 ②범죄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직접적 묘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제작진이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폭력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와인스타인은 목소리나 뒷모습으로만 등장하고 피해자들의 피해 상황의 경우 호텔을 배경으로 한 다급한 음성 메시지만으로 그려지지만 범죄자의 무도한 면모와 범죄 당시 피해자가 느꼈을 두려움을 묘사하는 데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밖에 산후우울증을 앓거나 육아·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두 '워킹맘' 민완 기자의 분투 장면도 색다른 감상을 남깁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나 드라마 '뉴스룸'처럼 보통 '특종 기자'는 가사는 뒤로한 채 일에만 몰입하는 워커 홀릭으로 그려지기 십상입니다. '그녀가 말했다'가 좋은 본보기가 되어,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여성 캐릭터들이 온갖 작품에서 등장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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