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제정책방향]
한은·KDI 전망치보다 낮아... 위기 공식화
"정책 효과 반영 없이 객관적 상황 그대로"
수출·투자 부진에 소비 위축 겹치자 '백기'
정부가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 중반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례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치다. 워낙 지표들이 좋지 않아 여간한 정책 의지로는 호전되기 힘든 형편임을 인정한 셈이다.
자칫 ‘저성장 늪’ 빠질 수도
정부는 21일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로 1.6%를 제시했다. 올해(2.5%)보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0.9%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정부 전망치는 가장 낮은 축이다. 국내외 주요 기관 중 정부보다 낮게 본 곳은 아시아개발은행(ADBㆍ1.5%) 정도뿐이다. 한국은행(1.7%)과 한국개발연구원(KDIㆍ1.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ㆍ1.8%), 국제통화기금(IMFㆍ2.0%) 등 대다수 기관이 한국 정부보다 낙관적인 예측치를 내놨다.
1%대 전망 자체가 ‘위기의 공식화’다. 지금껏 한국 성장률이 2%를 밑돈 것이 △제2차 오일쇼크를 겪었던 1980년(-1.6%)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코로나19 대유행기인 2020년(-0.7%) 등 네 차례뿐인데, 전부 위기였다.
내년 불황이 일시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저성장’ 국면 초입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 지난달 OECD가 한국 성장률이 2024년이 돼도 1%대(1.9%)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관측했고, 전날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은 “이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한국 경제가 초(超)저성장의 늪과 재도약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시기가 내년”이라고 말했다.
고용ㆍ물가 지표도 부정적
그렇더라도 정부의 ‘냉정한’ 평가는 의외다. 통상 이듬해 경제정책방향과 함께 연말 공개되는 성장률 전망치에는 정부의 ‘의지’가 포함된다. 정책 당국의 전망을 시장이 모종의 ‘신호’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라, 동요를 막으려면 비관 속에서도 낙관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의의 분식(粉飾)’이 가능한 여건이 아니다. △올해 6.6% 증가한 수출이 내년에는 글로벌 교역과 반도체 업황 위축 등의 영향으로 4.5% 감소하고 △글로벌 공급 차질 등 여파로 올해 1.8% 감소한 설비 투자의 부진은 내년 대외 불확실성 확대와 자금 조달 비용 상승 등으로 인해 심화(-2.8%)하리라는 게 정부 관측이다. △올해 ‘펜트업(억눌렸던 수요가 급속히 살아나는 현상)’에 힘입어 4.6% 증가했던 소비도 내년에는 고금리에 따른 소득 축소, 자산 가격 하락 때문에 증가세가 둔화(2.5%)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솔직한 진단이 불가피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19일 사전 언론브리핑에서 “정책 효과를 전망에 반영하지 않고 현재 처한 상황을 국민에게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성장 지표만 부정적인 게 아니다. 올해 81만 명인 취업자 수 증가폭은 내년 10만 명으로 대폭 축소될 전망인데, 상당 부분 올해 급증의 기저 효과여도 경기 둔화와 방역ㆍ보건 일자리 감소 등 고용 제약 요인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게 정부 분석이다. 물가의 경우 글로벌 원자재 가격 하락과 수요 위축 등으로 올해(5.1%)보다 상승세가 둔화(3.5%)하겠지만, 여전히 한은 물가 목표치(2.0%)를 훌쩍 상회하는 데다, 인상될 게 분명한 전기ㆍ가스요금 등 악재가 수두룩하다.
“하반기 갈수록 회복” 기대
다만 내년 말까지 내내 암울하지는 않으리라는 게 정부 기대다. “상반기에 어려움이 집중되고 하반기로 갈수록 세계 경제와 반도체 업황 개선 등으로 점차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내년 경제정책방향 중점 방향은 △거시 경제 안정 관리 △민생 경제 회복 지원 △민간 중심 활력 제고 △미래 대비 체질 개선 등 4개 축이다. 단기 목표인 ‘위기 극복’에 앞 두 축이, 중장기 목표인 ‘경제 재도약’에 뒤 두 축이 해당한다. 경제 운용 기조로는 자유ㆍ혁신ㆍ공정ㆍ연대 등 4가지가 제시됐다.
이날 경제정책방향 발표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 형식으로 진행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발표자로 나섰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오태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이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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