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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를 내보인 외교의 어려움

입력
2022.12.2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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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반격능력' '독도 도발'로 뒤통수
中은 대북 지렛대 행사 요청 외면
'한미일 공조' 천명 성급하진 않았나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직접적 표적이 된 중국과 북한의 반발은 차치하더라도, 일본이 지난 16일 3대 안보문서를 개정해 '반격능력 보유'를 천명한 일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에 긴장을 불어넣고 있다. 한 세기 전 일제의 패권 추구로 식민지 경험을 했던 우리로서는 경계의 목소리를 높여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일본이 최상위 안보문서인 '국가안보전략'에 독도 영유권 주장까지 명기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부는 미지근했다. 개정 당일 외교부가 내놓은 입장 가운데 비판적 내용은 독도 건에 한정됐다. 외교부는 주한 일본 공사를, 국방부는 대령급 방위주재관을 불러 항의했는데, 초치 대상 직급이 지난 7월 발간된 일본 방위백서에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는 고유 영토'라는 문구가 19년째 포함됐을 때와 똑같다. 독도 도발 수위가 연간 방위백서에서 개정 주기 5~10년의 안보문서로 높아졌건만 조치는 그대로였으니 사실상 대응이 약해진 셈이다.

또 다른 쟁점인 반격능력 보유에 외교부는 "일본이 '전수(專守·오로지 수비)방위' 원칙을 견지한다는 방침을 전제로 한 걸로 안다"며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냈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미중 전략경쟁 심화, 여기에 편승한 일본의 '전쟁 가능 국가' 전환으로 '역내 평화와 안정'이 한층 위태로워진 현실에서 당사국인 한국이 '일본 입장을 이해한다'는 식의 한가한 소리를 한 것이다.

한반도, 구체적으론 북한을 상대로 일본이 반격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두고 한일 양국이 이견을 빚은 일은 더욱 가관이다. 외교부가 "사전에 우리와 긴밀한 협의 및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장을 정리하던 시간에, 일본 정부 관계자는 외신 브리핑에서 "반격능력은 자위권이니 일본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뻗댔다. "반격능력은 긴급 상황에 발동되는 만큼 한국과 사전 협의를 하거나 동의를 얻을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안보문서 개정 전날 대응책을 묻는 질문에 "일본이 우리에게 내용을 설명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우리에게 가장 민감한 사안조차 사전에 협의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부가 한미일 공조에 공들이는 와중에 일본의 일방통행이 우리에게 뒤통수 맞은 듯한 배신감을 준다면, 역시 제 할 말만 반복하는 중국의 행보는 예견된 씁쓸함을 안긴다. 지난달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사드 배치' 이후 경색된 양국 관계가 풀려나갈 거란 기대가 무성했지만 현실은 영 딴판이다.

지난 12일 한중 외교장관 화상 회담만 봐도 그렇다. 정상 간 만남 이후 고위급 교류가 재개된 것까진 좋았지만, 막상 양국이 회담 결과라며 내놓은 자료에선 접점을 찾기 힘들다. 외교부 자료엔 박 장관이 북한 미사일 도발에 우려를 표하면서 '담대한 구상'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고, 왕이 외교부장은 "한반도 문제에 건설적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답했다는 내용이 비중 있게 포함됐다. 반면 중국 외교부 자료에 관련 내용은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두루뭉술하게 한 줄 언급됐을 뿐이다.

북한 전술핵이란 실존적 위협에 직면한 우리 입장에선 북한의 '재반격' 위험이 따르는 일본의 대북 반격보다 중국의 막후 영향력 행사가 훨씬 긴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황은 다르게 흘러가고, 새삼 전략적 모호성을 꺼내 들기도 어색해진 정부의 선택지는 갈수록 줄어만 간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도 전에 외교안보정책 기조를 분명히 한 것은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 심화라는 대외 환경에 조응하기 위해서였겠지만 타이밍이 너무 일렀고 선명도가 지나쳤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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