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체육도 '기본'이다
편집자주
강소희 작가, 서효인 시인이 스포츠로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 스포츠에 열광하는 두 필자의 시점에서 이 시대의 스포츠를 응원하고 지적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줄넘기 숙제가 주어졌다. 아파트 단지 뒤편 공터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아…하나를 제대로 넘지 못한다. 최근까지 대학 강의도 해보았고 더 어릴 때는 입시 학원이나 보습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로 학생들을 가르쳤건만, 내 아이를 가르치는 건 쉽지 않다. 사실 그전에는 구구단을 같이 익히다 실패했고 영어 단어를 함께 외우다 그것도 중도에 포기했다. 방학에는 책을 읽고 함께 독서 일기를 써나가기로 했는데 나로서는 전문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분야마저 어쩐지 지지부진하다.
줄넘기는 결국 두 개를 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줄넘기도 줄넘기인데 코로나 시기를 거쳐 오면서 아이의 체육활동이 부실한 듯하여 걱정됐다. 집에서는 뛰지 말라고 하고 바깥은 바이러스가 위험하다고 하는데 남는 시간은 이런저런 학원을 전전해야 하니 마음 놓고 뜀박질하며 움직일 기회가 아이에게 현저히 부족한 것이다. 거기에 줄넘기 하나 제대로 전수하지 못하는 아빠의 존재까지 한몫하고 있다.
내 아이를 지도하기란 역시 쉽지 않은 일인 걸까. 누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겠다. 이렇게 능력의 태부족함을 깨닫는 동시에 괜한 핑계와 변명으로 자기 합리화를 마친 후 근처 사교육 현장을 알아보았다. 남들보다 많이 보낸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벌써 아이의 스케줄은 복잡하다. 미술학원에 영어학원 그리고 학습지, 여기에 줄넘기 학원까지 추가해야 한다니 흔쾌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알아본 결과 줄넘기 학원이라는 게 생각처럼 단순하지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 ‘ㅇㅇㅇ 스포츠 아카데미’라는 곳이 있었는데 겨울방학 특강 신청을 받고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혹은 11시부터 12시까지 반을 나누어 주 5일 6주 활동이었다. 내용은 농구형 스포츠, 리듬 트레이닝, 레크리에이션, 리듬 줄넘기, 뉴스포츠(뉴스포츠가 대체 뭐지?)였다. 궁금증을 해결하기도 전에 선착순이라는 안내에 마음이 급해져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아직 몇 자리가 남았다는 말에 안도하고 아이의 의사를 물었는데 어째 반응이 영 시시하다.
가지 않겠다고 한다. 조금은 당황해 2순위로 생각해둔 수영 학원을 권했는데 이 역시 아이는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아홉 살인 주제에 벌써 ‘귀찮음’이란 걸 알아버린 걸까. 아내와 늦은 밤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어릴 때를 떠올려보았다. 아내는 줄넘기나 단거리 등에 나쁘지 않은 실력을 보였으나 운동 자체를 싫어했고, 나는 친구들과 각종 공놀이를 즐겼으나 운동신경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아이는 그러니까 우리 둘의 성향을 균형감 있게 받아 안은 셈이었다. ‘운동 별로 좋아하지 않음+운동신경이 별로 없음’. 비싼 돈 들여서 학원에 보낸 들 아이의 만족도나 줄넘기 능력(?)이나 별 기대가 되지 않으므로 스포츠 아카데미는 보내지 않기로 했다.
말 그대로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 영어학원이나 학습지를 하면서는 아이의 의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필수적인 공부이고 줄넘기 같은 체육활동은 그만큼 절박함은 없었던 듯하다.
오랫동안 그랬다. 국어, 영어, 수학은 필수지만 체육은 절대 아니다. 수학능력시험에 나오거나 입시 포트폴리오에 연관되면 긴요하고 필사적이 되지만 그게 아니면 옵션에 불과하다.
체육은 당연히 옵션 중의 옵션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체육활동은 물론 중요하겠지만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눈앞의 성적과 각종 입시에 비하자면 별것 아닌 문제로 치부된다. 일주일에 체육 수업을 세 시간 이상 진행할 것이 권장되나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로 진학할수록 실제 시수는 줄어들어 고등학생의 경우 일주일에 한 시간 하면 다행일 정도다. 그 시간은 몸이 아닌 머리를 쓰는 수업으로 대체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어도 다녀야 할, 영어나 수학으로. 다른 중요한 과목으로.
그렇다면 수업이 아닌 시간에 스포츠 활동은 쉬이 가능한가. 학교 운동장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던 축구나 농구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흔치 않다. 팀을 짜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공을 받고 승부를 걸고 결과에 승복하는 체험은 정기적으로 하기 거의 불가능한 실정에 이르렀다. 어떤 아이들은 줄넘기 학원이나 스포츠 학원에 다닐 것이다. 일부 아이들은 비슷한 활동을 PC방에서 거북목을 한 채 게임에 열중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학원 스포츠는 엘리트 운동선수에게만 허락돼 왔다. 전문 선수를 키우기 위한 ‘운동부’는 다른 학생들과는 반대로 학업에는 최소한으로 참여하고 나머지 시간을 ‘운동선수’로 성장하는 데 할애한다. 그렇게 기본적인 학습을 도외시하여 선수로서 대성하지 못하고 때로 실패하는 데에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불상사를 최소화하고자 최근 도입된 ‘주말리그’ 같은 제도에 일부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수들의 기량 발전이 저해된다는 것이다. 성적과 입시에만 골몰하는 다른 학생들의 현실에 방향만 다른 거울을 비춘 것만 같다.
이웃 나라 일본은 클럽 스포츠가 활성화돼 있다. 예컨대 일본에서의 배구는 어릴 때 한 번쯤은 체육관에서 해보았고 지역 대회라도 나갈 수 있었던 추억의 종목이거나 현재 진행형의 취미지만 우리에게 배구는 TV로 가끔 시청하다 올림픽에서 성적을 거두면 갑작스레 열광하게 되는 스포츠다. 해본 적 있는 스포츠와 가끔 보기만 했던 스포츠는 그 인기의 지속성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잘 알다시피 미국은 학교나 지역 사회에 각종 스포츠 활동을 위한 시설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야구를 하고 싶으면 야구장에서, 미식축구를 하고 싶으면 미식축구장에서 실력을 갈고닦으면 된다. 그러다 두각을 나타내면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미국 프로스포츠계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스포츠 시설은 국가의 경제 수준에 비해 열악하기 짝이 없다.
도심의 학교는 학급 과밀화로 운동장과 체육관이 제 용도를 다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의 것은 엘리트 선수들을 위해 쓰인다. 동네의 스포츠 시설은 대체로 비장애인인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 학생들은 뛰고 싶을 때 어디로 가야 하는가. 누가 답할 수 있겠는가 답이 없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겨울방학이다. 이런저런 탓을 하기에 아이의 크는 속도는 누군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이의 손을 잡고 무엇이라도 해봐야겠다.
스포츠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동네 산책이라도 하는 게 좋겠지. 자주 산책하다 보면 비로소 겨울 등산을 할 용기나 자신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자전거를 함께 타거나 캐치볼을 하는 것도 좋겠다. 아니, 그것보다 줄넘기를 해야겠다. 아이는 이제 두 개를 넘는다고 하니 나도 몇 개나 넘을 수 있는지 세어 봐야지. 제자리에서 뛰어 봐야지.
줄넘기는 최소한의 도구로 제자리에서 뛰는 운동이다. 이토록 기본적이어서 초등학교 저학년의 숙제로 나오는 것일 테다. 학교의 체육 수업도 마찬가지 아닐까. 너무나 기본적이라서 어쩌면 수학이나 영어보다 더 기본이기에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겨울방학, 집에서의 수업 시간을 정해 이제 줄넘기를 시작한다. 하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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