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잇단 대통령 비공개 발언 공개
지지율 40%대 회복에 '자신감 반영' 해석
역대 대통령들 지적받은 '만기친람' 우려
편집자주
꼬집은 소금이나 설탕 따위의 양념을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집어올린 양을 의미합니다. 아주 적은 양이지만 때로는 꼬집 하나에 음식 맛이 달라지듯, 이슈의 본질을 꿰뚫는 팩트 한 꼬집에 확 달라진 정치 분석을 보여드립니다.
'국정 운영에 대한 자신감이냐, 만기친람의 전조냐.'
대통령실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비공개회의 이후 공개한 발언 전문을 보면, 윤 대통령의 메시지가 길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통상 비공개회의에서 대통령 발언이 길 경우, 핵심만을 요약하거나 일부 내용을 정제해 소개하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대국민 소통 강화를 위해 대통령의 발언도 가감 없이 공개하고 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대통령실, 비공개회의 영상 연달아 공개
지난 21일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 전문을 공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약 16분간 5,300자 분량에 해당하는 발언이었다. 통상 대통령 주재 회의는 풀(pool·대표 취재) 기자에게 모두발언만 공개하는데, 이번에는 사후에 대통령의 발언 전문과 영상을 언론에 제공했다.
지난 7일 윤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의 경우도 대통령의 중간·마무리 발언을 추려 약 35분간의 영상이 사후에 공개됐다. 약 1만 자 분량이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국민 소통 강화 차원에서 직접 지시한 것"이라며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고민을 왜곡 없이 국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최근 국정과제점검회의(12월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10월 27일)를 생방송으로 진행해 윤 대통령의 회의 발언을 공개한 바 있다.
'프리 스타일' 尹, 참모와 소통도 주도
회의 영상들을 보면 윤 대통령이 중간 또는 마무리 발언을 할 때 원고를 보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난 21일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을 하면서 책상에 놓인 A4용지를 덮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형식적인 토론을 지양해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본다"며 "평소 회의 때도 자료는 최소화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강조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순방 직후 수석비서관을 포함한 비서관급 참모진을 소집해 원고 없이 1시간가량 성과를 브리핑했다는 후문이다.
참모진과의 소통을 주도하는 윤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도 드러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7일 이태원 참사 후속대책을 논의한 자리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을 질책하거나, 전날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아까 (권남훈) 교수님께서 규제를 R&D(연구개발)의 일부로 봐야 된다고 하는 것도 굉장히 아주 적절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는 등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회의를 주도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발언 분량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취임 초엔 짧게 연설하더니... 왜?
취임 초기 윤 대통령의 연설문은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짧은 편이었다. 지난 5월 대통령 취임식에서 참모진은 30분 분량의 취임사 초안을 올렸으나, 윤 대통령이 이를 다듬으면서 3,303자(16분 분량)로 대폭 줄인 게 대표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8,688자), 박근혜 전 대통령(5,196자)의 취임사와 비교할 때 거의 절반 수준이었다. 윤 대통령의 지난 10월 국회 시정연설도 18분 28초 분량으로 역대 대통령 시정연설 중 가장 짧았다. 대통령실은 당시 "효율적이고 임팩트 있게 대통령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최근 윤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 길어진 배경에는 국정 지지율 추세와 연결 짓는 해석이 많다. '비속어 발언'으로 증폭된 MBC 등과의 갈등과 이로 인한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 중단에도 불구,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계기로 최근 국정 지지율이 40%대로 상승하며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다. 대통령실 분위기도 20%대 중후반에 갇혀 있을 때와 달리 상당히 고무돼 있다.
대통령이 국정 현안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만기친람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윤 대통령의 발언은 집권 2년 차를 맞이하는 내년 3대(노동·교육·연금) 개혁을 앞세워 국정 성과를 거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히지만, 대통령이 모든 현안의 세부 내용까지 다 아는 것은 사실상 무리이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쉽게 빠졌던 함정이었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모든 발언은 통치 메시지"라며 "과거에도 대통령의 메시지가 많아질수록 참모나 관료는 물론 당도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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