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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혁명이 프랑스를 자멸로 이끌었다?

입력
2022.12.23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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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제무르 '프랑스의 자살'


프랑스 극우 성향 평론가 에릭 제무르(63)가 지난해 11월 파리 교외 불로뉴비양쿠르에서 진행된 TF1 방송 인터뷰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프랑스 극우 성향 평론가 에릭 제무르(63)가 지난해 11월 파리 교외 불로뉴비양쿠르에서 진행된 TF1 방송 인터뷰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프랑스의 자살’이라는 자극적 제목만큼이나 “프랑스는 유럽의 병자(病者)다”는 첫 문장도 도발적이다. '프랑스의 트럼프'로 불리는 에릭 제무르가 지난 4월 프랑스 대선에서 유력 대통령 후보로 급부상하는 원동력을 제공했던 책이 8년 만에 국내 번역, 출간됐다.

제무르는 대선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치열한 접전을 펼친 마리 르펜 국민연합(RN) 전 대표보다 더 오른쪽 편에 선 정치가로 평가받는다. 한때 대선 지지율에서 르펜을 제칠 정도였던 그는 유럽을 흔드는 극우 정서를 대변하는 셈이다. 프랑스의 보수 성향 일간지 르 피가로 기자 출신으로 TV 시사 프로그램 등에서 이슬람 이민자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거침없이 해대며 인기를 모았다. 대선을 앞두고 “이민자들과 동성애자들 탓에 프랑스는 자살의 길을 걷고 있다”며 “프랑스 역사상 이렇게까지 국가가 위기에 처한 적은 없다”고 외치며 인기몰이를 했던 제무르의 정치 논리가 이 책에 담겼다.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제무르는 68혁명이 일어나고 1970년 드골 전 대통령이 사망한 후 프랑스가 쇠퇴일로를 걸어왔다면서 좌파가 주장해온 자유, 세계화, 민영화, 이민자 수용, 페미니즘,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 등이 어떻게 프랑스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따진다. 하지만 드골 시대에 갇혀 있는 논의는 종종 시대착오적으로 읽히며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듯한 관점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프랑스의 자살·에릭 제무르 지음·이선우 옮김·틈새책방 발행·788쪽·3만8,000원

프랑스의 자살·에릭 제무르 지음·이선우 옮김·틈새책방 발행·788쪽·3만8,000원

다만 유럽 극우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떤 논리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지에 주목하는 독자라면 관심을 끌 만하다. 국내 문제에 단순 대입하긴 어렵지만, 반이민과 민족주의 등의 의제가 향후 국내 정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도 예감해볼 수 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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