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이 법정 기한을 22일이나 넘겨 지각 처리되는 와중에도 여야 실세 의원들은 밀실에서 지역구 사회기반시설(SOC) 예산을 대폭 증액하는 구태를 되풀이했다. 본보가 내년도 예산 확정안을 분석했더니 도로·철도·공항 사업 및 예산이 정부안 대비 65건, 총 2,833억 원이 늘어났다. 당초 정부 편성 예산의 11.5%에 달하는 액수다. 예결위의 예산안 심사 기한이 지난달 말로 종료되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원내대표 및 정책위의장 간 '2+2 협의체'를 꾸려 비공개로 협상했는데, 이 과정에서 '쪽지예산'이 오간 것이다.
국민의힘은 비대위원장(정진석) 정책위의장(성일종) 사무총장(김석기) 원내수석부대표(송언석), 더불어민주당은 사무총장(조정식) 최고위원(박찬대) 예결위 간사(박정) 등 당 지도부가 수십억, 수백억 원 규모의 지역구 예산 끼워넣기에 대거 가담했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여당 실세 권성동·장제원 의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산안 협상에서 막후 조율을 맡은 여당 의원은 원안에 없던 도로·철도 건설 예산 130억 원을 새로 따내고 또 다른 철도 예산도 100억 원을 늘렸다. 과연 공공심과 책임감을 갖고 예산 심사에 임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야가 예산 처리 기한이 임박했다는 핑계로 예결위 소소위(위원장+양당 간사), 원내대표 협의체 등 비공식 협상 기구로 예산 심사를 끌고 가는 행태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이 밀실에선 정부가 집행 가능성이 낮다며 반대한 사업마저 신설 또는 증액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어 논의 과정을 파악할 수 없다. 이러니 지난해 여야 협상 과정에서 증액된 올해 SOC 사업 22건 가운데 8건은 예산 집행률(10월 말 기준)이 50%에 못 미치는 등 비효율이 만연하다. 쪽지예산을 재선용 치적으로 홍보하는 의원들은 공사 분별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회에 예산안 심사 시간을 충분히 부여하고 투명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