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를 중심으로 아파트 등 2,700여 채를 차명 보유하다 전세보증금 266억 원을 가로챈 ‘건축왕’의 전세 사기 전모가 지난 23일 드러났다.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빌라왕’ 사건보다 2배 이상 큰 규모다. 자기 주택을 '바지' 임대사업자 명의로 계약해 세입자 300여 명에게 피해를 입혔다. 국토교통부가 9월 말부터 접수한 전세 사기 피해상담 중 1차로 경찰청에 수사 의뢰한 사례가 106건에 달해 비슷한 피해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뒤늦게 국세징수법을 개정해 세입자가 집주인의 신용도 확인을 위해 세금 체납 현황을 열람할 수 있게 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서고는 있다. 하지만 이미 피해를 본 세입자들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세입자가 전세 계약을 하는 것은 임대업자가 아니라 정부의 임대차 보호 장치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 보호장치인 임대주택 보증보험 제도는 너무 허술하다. 이 보험은 집주인이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돌려주는 상품이다. 모든 임대사업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이미 지난해 8월부터 시행 중이다.
하지만 집주인이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과태료가 턱없이 적다. 집주인이 바뀌면 세입자는 속수무책이다. 보증 비율도 전액인 경우가 많지 않다. 다행히 보증금을 반환받는다 해도 그 기간이 너무 길다. 이런 허점 때문에 ‘빌라왕’의 경우 1,139채 임대주택 중 보험 가입은 44채에 불과했다.
보증보험 제도의 이런 허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세입자 불안감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보다 18% 늘어나는 내년에 전셋값이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많은데 세입자 불안이 계속된다면 하락 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집값 추락을 막기 위해 다주택자 세금 경감, 임대사업자 세 혜택 강화 등을 서두르고 있다. 집값 안정을 위해서라도 세입자 보호 장치를 대폭 강화해 세입자 불안부터 가라앉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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