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심사평
예심을 통해 개별적으로 추천을 받은 응모작 중 인상 깊은 것들이 적지 않았다. 간략하게나마 그 제목만을 언급하자면, '조이의 눈', '칼잡이들', '없는 마음', '검은 우산은 괜찮습니다', '미즈치와 거북' 등이었다. 본심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는 못했으나, 나름 완성도를 갖춘 소설들이었다.
최종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응모작은 모두 네 편이었다. '로스웰식 농담'은 흥미로운 배경 정보를 바탕으로 여행 중 동행하게 된 인물들과의 일화를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외계인’과 ‘아메리칸 원주민’의 은유적 구도가 인상 깊었으나,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들은 너무 단조롭게 처리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가끔 아닌 것들이'는 특별할 것 없는 상황 속에서 주고받는 의미 있는 대화들, 그로 인해 형성되는 인물 간 관계망을 능숙하게 표현한 소설이었다. 흐트러짐 없는 문장도 매력적이었으나 특히, ‘희주’라는 생동감 있는 캐릭터에 가장 호감이 갔다. 그런데 이 응모작의 장점으로 꼽힌 능숙함이 한편으로는 근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신인 작가들에게 보이는 익숙함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BABIRUSA'는 당선작을 두고 가장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게 한 작품이었다. 문장의 밀도와 기세가 압도적이었고, 도상과 제사(題詞) 등을 활용하는 방식이 단연 돋보였다. 단순히 낯선 텍스트를 직조하는 돌발적이고 일탈적인 표현 방법이 아니라, 이를 서툴지 않게 표현하는 논리와 구성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더 큰 가치였다. 아쉽게 당선작으로 선택되지는 못했지만, 머지않은 때 어느 자리에서건 이 작가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은 ‘체호프의 총’을 떠올리게 하는 도입부로 시작된다. 잘 알려진 격언대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총’ 역시 결국 격발되고야 마는데,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 서사의 굴곡과 긴장감을 조성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더구나 두 인물의 비극적인 사연에서 주목하게 되는 증오와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말미에 이르러 더욱 단단해지거나 단숨에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고작 견디고 버티는 쪽으로 나아간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집 안으로 빗물이 들이치는 순간이 아니라, 제목이 암시하는 바대로 그 이후에 계속되는 생활을 그리고 있는 이 작가의 신중하고 성숙한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결말이었다. 무엇보다 증오와 죄책감을 혐오와 경멸이 대신하지 못하도록 애쓰는 노력에 대해, 그런 마음에 지고 싶지 않은 그 맹렬함에 지지를 보낸다.
심사위원 은희경, 이경재, 조연정, 한유주, 임현(대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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