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스쿨존 횡단보도 '일시 정지' 의무
5개월 지나도 사고다발 스쿨존서 유명무실
"운전자 반발 만만치 않아" 경찰 단속 주저
26일 낮 12시 서울 강서구 공진초등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횡단보도. 학교에서 나온 아이들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순간 승용차 한 대가 아이들 앞을 ‘쌩’하니 지나갔다. 40분간 횡단보도를 지나친 차량은 모두 55대. 그런데 횡단보도 정지선 앞에서 차를 멈춘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대기 중인 아이들을 보고 브레이크 한 번 밟지 않고 횡단보도를 지나간 차량도 5대나 됐다.
모두 범칙금 6만 원(승용차 기준)이 부과되는 도로교통법 위반 행위다. 올해 7월 12일부터 신호등 없는 스쿨존 횡단보도라도 무조건 차량을 일시 정지해야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전면 시행됐다. 사람이 있든 없든 차를 일단 세워야 혹시 모를 어린이 교통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취지다.
가장 최근에 이뤄진 어린이 교통안전 조치지만, 스쿨존 일시 정지 의무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뀐 교통 법규를 운전자들에게 적극 알리고 계도ㆍ단속에 나서야 할 경찰이 손을 놓고 있는 탓이 크다.
‘어린이보호’ 통학차량도 횡단보도서 안 멈췄다
어린이 교통사고가 잦은 사고 다발 스쿨존에서조차 일시 정지 의무는 유명무실했다. 지난해 7월 서울 영등포구 도림초 인근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여섯 살 아이가 횡단 도중 차에 치여 숨졌다. 그러나 지난달 15일 오후 이곳에서 30분 정도 살펴본 결과 정지선 앞에서 차를 멈춘 운전자는 전무했다. 일시 정지 표지판이 쉽게 눈에 띄었으나, 운전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운전면허 학원 차량이나 ‘어린이 보호’ 문구를 부착한 학원 통학 차량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뀐 법규를 몰랐습니다.” 운전자들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정모(27)씨는 “사람이 없어도 멈춰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택시기사 김모(77)씨도 “우회전할 때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는 건 알고 있었는데, 스쿨존 횡단보도에서 정지해야 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법 바꿀 땐 언제고… 경찰 "운전자 눈치 보여서"
홍보 부족이 분명한데, 경찰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경찰 관계자는 “스쿨존 일시 정지 의무와 관련한 계도 활동을 하거나 특별단속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 교통경찰관도 “스쿨존은 단속 우선순위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는 경찰이 법 개정에 따라 동시 시행된 ‘교차로 우회전 일시 정지’ 의무에 대해 계도ㆍ단속에 총력을 다한 것과도 비교된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스쿨존 횡단보도 일시 정지 의무는 국민 법 감정과는 괴리되는 측면이 있어 단속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법을 만들어 놓고도 대중의 거부감을 이유로 취지를 적극 알리는 노력을 경찰이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주의하지 않고 지나쳐도 된다는 인식이 몹시 강하다”며 “수십 년간 굳어진 습관을 바꾸려면 당국의 적극적 홍보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사고 위험이 높은 곳에 과속방지턱과 고원식 횡단보도 같은 속도 저감시설을 설치하는 등의 인프라 확충 작업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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