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부문 수상작, '에세'
윤경희 문학평론가 심사평
후보 범위를 좁히기 전에 선정 기준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어떤 번역서를 상으로써 치하한다면, 그것은 외국어 서적 자체가 학술과 교양의 탁월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책의 가치와는 별도로 번역자의 번역이 훌륭한 성취를 이루었기 때문인가.
후보들 외에 올해의 번역서 전반과 경향까지 대상을 넓혀 논의한 끝에, 책의 가치는 기본으로 하되 번역의 수준과 번역자의 성취를 높이 평가하기로 합의했다. 열 권 중 특히 여러 각도에서 거론된 것은 김윤하가 옮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나보코프 단편전집’, 김준한이 옮긴 프랑스 서사시 ‘롤랑의 노래’, 손희수가 옮긴 마야 리 랑그바드의 ‘그 여자는 화가 난다’, 신광복이 옮긴 대니얼 데닛의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 심민화와 최권행이 옮긴 미셸 드 몽테뉴의 ‘에세’, 정지인이 옮긴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정지인의 번역은 과학과 의학 전문 역자가 이 책으로 대중에게 읽는 재미도 한껏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았다. 신광복의 번역에서는 원저자의 난해하기로 이름난 사유와 문체와 주체적으로 대결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의견이 있었다. 김준한의 번역은 이 작품에 접근하는 길을 처음 열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손희수의 번역은 한국 출판계에 비교적 희소한 덴마크어 문학 작품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김윤하의 번역은 전공자로서의 지식과 작가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원문의 문학성을 한국어에서도 독특하게 구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심민화와 최권행이 도달한 번역의 성취는 심사위원 다수가 무리 없이 인정하는 바였다. 몽테뉴 및 당대 문학을 연구해온 학자 두 사람이 오랜 시간 매진하고 협업한 역작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번역이란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기술적인 업무를 넘어, 누군가에게는 삶을 걸고 해나가는 수행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번역에서 독자를 미지로 데려가는 수행성을 읽고 그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윤경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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