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부문 수상작] ‘어딘가에는 OOO이 있다’
‘어딘가에는 OOO이 있다’ 시리즈는 창의성이 반짝이는 출판계에서도 색다른 책이다. 지역에 기반을 둔 다섯 출판사가 뭉쳐, 지역성을 자랑하는 책을 펴낸 일 자체가 흔치 않은 시도다. 독자들의 시선이 책에서 멀어진 시대, 그나마 인프라가 집중된 도시에서, 가장 최신 주제를 다뤄야, 독자에 다가갈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장렬히 배신한다.
그건 도시 출신들은 모르는, 지역에 기반을 둔 이들의 '체험'에서 비롯됐다. 시리즈를 처음 기획한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는 “지역에 오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소재들이 둥둥 떠다녔다”며 “이런 이야기가 있네, 새로운데 재미있네, 삶의 환경이 바뀌니 이런 변화를 많이 접하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책들은 새롭고 별나서 하나하나가 값지다.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옥천ㆍ포도밭출판)’를 집어 들면 지역에서 살아가며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이주여성들을 응원하게 된다. ‘어딘가에는 도심 속 철공소가 있다’(대전ㆍ이유출판)는 70년 청춘을 바쳐 묵묵히 자리를 지킨 대전 장인 이야기가 뭉근한 감동을 준다. ‘어딘가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열매하나)는 마을정원을 만들며 꽃을 닮아간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긴 세월의 전승과 공유로 완성된 충무김밥 서사를 그린 ‘어딘가에는 원조 충무김밥이 있다’(통영ㆍ남해의 봄날), 젊은 인쇄공 부부의 태백 정착기를 실감나게 끌고 나간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고성ㆍ온다프레스)도 흥미롭다. ‘지방은 뒤떨어진 곳’이라는 편견에 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가꾸는 이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서로 다른 출판사들이 어떻게 하나로 모였을까. ‘뭘 물어볼 데가 없어서’다. 정 대표는 “지역에서 출판을 한다는 게 재미있고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뭐 하나 물어볼 곳도 없어 외롭다”고 했다. 정 대표가 지역 출판사들에 “같이 일해보자”고 전화를 돌렸고, 다들 비슷하게 외로웠는지 “흔쾌히 승낙”했다고.
사실 이들 출판사 대표들은 하나로 묶어 상을 주기가 민망한 베테랑들이다. 바다출판사, 현암사 등에서 일한 최진규 포도밭 대표는 편집ㆍ디자인ㆍ마케팅이 모두 가능한 능력자다. 개마고원, 창작과비평 등에서 일했던 박대우 온다 대표 역시 뒤지지 않는다. 유정미 이유출판 대표, 천소희ㆍ박수희 열매하나 부부 대표 역시 책쟁이로 잔뼈가 굵다. 남해의봄날은 통영으로 내려간 지 올해 10년째다. 지역 출판사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책은 출간 당시 상당한 조명을 받았으나 화제성만큼 팔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 대표는 “지역 인구가 절대적으로 적기도 하고. 대도시 분들이 우리 책들을 신선하게 받아들이기는 해도 대량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더라”고 했다. 다만 "이런 책들이 생명력이 길어요. 가늘고 길게 독자를 만날 것이라 믿는다"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어려움이 생기면 함께 의논할 든든한 팀이 생겼다는 보람"이라는 말에선 편집 과정에서 형성된 진한 동료애가 느껴진다.
매년 출판사당 한 권씩 책을 내면서 시리즈를 이어 가는 게 목표. “대도시 삶과 지역 삶 모두 각자의 선택이잖아요. 지역에도 정말 가치 있는 게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시리즈 제목이 참 잘 나왔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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